hinykorea
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6회

 안 동일 지음

 18.  관악산과 경복궁

동사로 돌아온 금원은 용호단 청년 덕환과 마주 앉았다. 함께 성내에 들어갔던 청년이었다. 용호단은 결사의 청년 무력으로 일단 청계 어른들의 경호를 주 임무로 맡고 있는 조직이었다. 현봉당이 주도해 근자에 만든 조직인데 볼수록 대견한 청년들 이었다.
“그래서 자네가 자하문밖까지 저들을 쫒아 갔다는 말인가?”
“예 그랬습죠.”
“저들은 여럿이고 자네는 혼자인데 들켜서 시비라도 붙게 되면 어쩌려고 그랬나?”
“할 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환은 변대감 집 앞을 염탐하고 있던 흑의 사내들을 발견했고 그들을 따라가 저들이 양주 석실서원 산하의 자경단 별동대라는 것과 저들의 자하문밖 거처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서 기이한 광경을 목도해 이를 현봉에게 알리려고 나루로 가느라 한 처사네 집으로 오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용호단은 나루의 사공들을 통해 총단인 부용사와 연락하고 있었다. 그가 목도한 것은 한 떼의 중국인 검객들이었단다. 자경단 근거지에 중국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이한 일이었다.

금원과 보안재는 한번 열린 길이 비단길이라는 말이 그대로 였다. 주인 변광운 대감이 열심히 주단을 깔아 주고 있었다.
금원과 보안재 노장들과의 관악산 봄놀이 역시 변광운 대감의 극성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변대감은 금원이 무슨 말 끝에 내달 중순에 과천 관악산 연주암에 갈 일이 있다고 하니 자신도 때를 맞춰 산에 오르겠다고 하더니 그예 일을 크게 벌인 것이었다.

보안재 시회 첫 참가 후 변대감은 부쩍 가깝게 금원에게 다가 왔다. 시회 날 정신이 없기도 했고 그걸 그냥 자신이 가져가도 되는지 몰랐기에 여러 사람들이 자신을 그린 그림이며 읊은 시를 쓴 서화들을 챙겨오지 않았는데 그것들을 정성스레 배접까지 해서 동사로 보내 왔다. 서화만 보낸 것이 아니라 곳감이며 버섯, 그리고 산채 말린 등속을 잔뜩 함께 실어 왔었다.
처음 시회에 참석한 9월 하순 이래 네 번 더 시회가 있었다. 박규수 대감이 다시 관로에 나가게 되면서 공사간에 다망했기에 변 대감이 좌장을 맡았다. 변 좌장은 시회 닷새 전 쯤에 금원이 있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 꼭 참석하라고 종용하곤 했다.

기별대로 과천향교 앞에 갔더니 보안재 마당쇠 칠성이가 하마비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와 금원의 바랑을 뺏듯이 가져간다. 잠시 후 노장들이 향교 대문을 우루루 나오는데 박규수 대감만 빼고 보안재 노장들은 다 출동한 것 같았다.
변대감을 위시해 우선대감의 얼굴이 보였고 이상훈 대감도 있었고 흥선군의 모습까지 보였다. 병광운의 종형인 변종운 대감도 있었다..
금원이 다가가 고개를 숙이자 모두들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우리 보배님 덕에 이렇게 산놀이 하게 됩니다 그려.”
“삼호당이 납시니 하늘님도 우릴 돕네, 오늘 날씨 얼마나 좋아. ”
“그래 그동안 잘 지냈는가? 얼굴이 더 좋아졌네 그려.”
저마다 덕담을 한마디씩 던졌다.
과연 이 노인들이 제대로 오르려나 싶다. 연주암까지 오르는 길은 하도 사람들이 다녀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노인들에게는…
“오르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길이 꽤 가파른데. 땅도 질고…”
가장 연상인 변종운 대감에게 금원이 물었다. 변 대감의 사촌형이다.
“이 사람아 내가 중원 땅을 수십차례 걸어서 왕복한 사람일세 걱정말게.”
“거참, 가다 힘들면 쉬었다 가면 될 일 아닌가. 세월을 잡고서…”
누군가 한마디 보탰다. 맞는 말이다. 그저 웃고 노는 일인데 급할 게 뭐 있는가.

일행은 향교 옆길로 해서 가장 평탄하다는 계곡 쪽 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계곡의 물은 아직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리 내어 흐르고 있었다.
막상 산에 올라보니 역시 역관 출신인 변씨 형제며 우선 대감은 연부역강 노익장을 과시하며 씩씩하게 올랐다. 오히려 젊은 축인 흥선군이 뒤쪽에 따라왔고 문관인 이상훈 대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힘겨워 했다.
금원은 일행 전체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작정하고 앞에서 속력을 냈다.
이제 계곡을 건너려면 돌 징검다리를 건너야 한다.
변대감이 냉큼 앞질러 건너면서 큰 돌 작은 돌 높이 차이가 있는 곳에서 금원에게 손을 내밀어 준다. 지팡이를 내밀어 주어도 될텐데 굳이 맨손이다.
순간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대감이 쑥스러워 할 까봐 금원은 손을 내밀었다.
의외로 대감의 손은 뭉툭했고 굳은 살이 박혀 있았다. 부자 역관의 손이 아니라 무인의 손 같다. 내를 건너자 잠시 내리막이다.
물소리가 더 잘 들렸다. 바람도 살랑 살랑 불고~~~
다시 오르막이다. 마지막 고빗길이다.

큰 바위 마다 누군가 글을 새겨 놓았다. ‘나무 아미타불’. 너도 나도 극락이 그리운 게다.
땀을 다시 어지간히 쏟았을 즈음 이제 사람들이 만든 돌계단이 나왔다. 연주암이 가까워 졌다는 신호다. 연주암 증축을 할 때 공들여 만들었다는 긴 돌 계단이다.
“조금 쉬시며 기다리지요.”금원이 이마의 땀을 훔치면서 먼저 계단에 앉았다.
“정말 하루가 다르다고 하더니 내 몸이 내몸 아닐세 그려.” 변광운이 옆에 앉으며 종아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그래도 여간 강건하신 게 아닙니다.”
“나야말로 무거운 등짐지고 연행길을 얼마나 다녔는데…그땐 날라 다녔지.”
“대감이 마지막으로 청국에 다녀 오신게?”
“벌써 10여년 전일세”
“아편전쟁 직후였군요.”
“그랬지. 막 강화조약이 성립될 무렵이었지.”
“서양의 화포와 흑선이 그렇게 강한 것입니까?”
“그렇다네, 청이 그렇게 쉽게 패퇴할 줄이야. 요즘엔 또 태평천국인가 뭔가 해서 난리 아닌가.”
“우리는 괜찮겠습니까? 대감.”
“그래서 걱정일세, 그런데도 이 조정 사람들 하는 일을 보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92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 현장 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20회

안동일 기자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76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