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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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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45회

 안 동일 지음

보안재 쑥대머리

중인 중심의 벽오사 계원이 시작한 손뼉이 좌중 모두에게 전염돼 음식을 나르던 용인들을 포함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손뼉을 쳤던 것이다. 변씨 저택의 사랑채에서 그런 박수소리가 들린 것은 전무후무 였다. 그 무렵 양반들은 경망스럽다며 결코 박수하지 않았다.
흥선군이 우정 금원의 옆으로 와서 술을 따라주면서 치하했다.
“정말 잘 들었소이다. 그런데 동도께서 아까 양주의 신 누구라고 했던데?”
“예 원래는 양주사람이지만 지금은 전라도에서 약방을 하는 동기 신재효라는 사내 올습니다,.”
“그래요 신가 재효라…“
“나이는?”
“저보다 너뎃살 위입니다. 아직 젊습니다.”
흥선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로 돌아갔다.

이날 변씨 저택 시회 뒷풀이의 마지막 음식은 경기도식 털레기였다.
전형적인 민초들의 음식이다. 이것저것 탈탈 털어 끓인 수제비를 이른다. 마른새우와 멸치로 낸 국물과 배추며 푸성귀들, 매운 고초 몇잎이 내는 맛이 일품이었다. 초의당도 금원도 전혀 개의치 않고 맛있게 먹었다. 맛은 궁중 수라였다.

시회가 모두 끝나고 마침 필제와 초의스님의 숙소가 금원이 묵을 한처사 누이 집과 같은 미나리골 방향이어서 자연스레 함께 걸으며 회포를 풀 수 있었다. 우선 대감과 초의스님은 젊은 두 사람에게 시간을 주려는 듯 성큼 앞서 걸어갔다.
금원과 함께 성안에 들어와서 보안재 대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던 덕환의 모습이 안 보이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가을 밤바람 쌀쌀한데 떨며 기다리고 있던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한 처사네 집에 먼저 갔거나 나중에 오겠거니 믿기로 했다.
필제는 어쩐지 표정이 밝지 않았다. 불만이 많은 듯 했다.
“역시 양반네들이라는 사람들은 말만 앞서지요, 오늘 또 한번 확인 했습니다. 자기 손해는 전혀 없죠. 이 어려운 시국에 긴장감 하나 없고…”
“그건 너무 선달님이 민감하게 너무 앞서 나가는 것 같은데요, 그래도 오늘 모인 분들은 완당 어르신의 뜻을 각별히 따르는 제자분들 이십니다.”
“이들에게 뭐를 크게 기대하기는 틀렸습니다. 그리고 누님이야 말로 너무 여기 양반님들에게 빠져들지 마십시오. 좋을 땐 다 해줄 것 같다가도 수틀리면 단박에 돌아서서 안면 싹 바꾸는 사람들이 저들입니다. 안면만 바꿉니까? 칼을 들이 댑니다. 칼을…”

금원은 필제가 갑자기 심통이 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금원이 양반네들에게 적잖이 교태를 부린 것 때문인데 뭐라 말 하기는 뭣해서 그러는 것이 틀림없었다.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애써 모른 척 했다.
“너무 성급하게 결안을 내리지는 마시지요. 우리 선달님, 어느 구름에 비올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까는 말씀 잘 하시데, 신분제도 개혁 없이 이 나라 내일은 없습니다.”
뒷부분은 필제 말투를 흉내 냈다. 그랬더니 조금 풀린 모양이다.
“그래 누님은 그동안 어찌 지내셨습니까?”
그제야 금원의 근황에 대해 물어왔다.
“계회일 하고 스님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바쁘게 지냈지요. 선달님은 그 사이 좋은 일이 많으셨나 봅니다. 얼굴이 아주 훤해 지셨수.”
아직 필제에게 금원의 계회 일 이라 하면 동사와 용화종단 낭가계의 일이다.
“그렇습니까? 지난 반년 동안 산에 들어가 무예를 닦았더니 그런 모양입니다.”
필제는 진짜로 지난 6개월 동안 치악산에 들어가 무예수련을 했단다. 그것도 조선 검술의 최고수, 백동수의 전인에게 조선 무예 18반을 새롭게 익혔단다.
“그런 좋은 인연이 있었구료. 축하해요.”
숙소에 다 왔기에 필제와는 다음을 기약하고 헤어져야 했다.
“선달 아우님,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 아시죠?.”
평범하기만 아까부터 꼭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금원은 부러 필제의 손을 잡아 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 남자 순진하게 손을 떨었다.
필제는 조만간 동사로 찾아 오겠다고 했다. 굳이 현봉과 덕배에게 볼 일이 많다는 말을 했다.

다음날 오전 금원은 이상적 대감을 찾아 그의 사랑에 마주 앉았다. 태을 스님이 전하라는 봉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전할 수도 있었지만 보는 눈도 있었고 또 우선이 금원에게 꼭 줄 것이 있다며 집에 들르라고 했다.
우선의 사랑은 서화 전시실을 방불케 했다. 고금 특히 중국의 유명 서화가 많았다.
“대단합니다. 이 귀한 것들을 어찌 이렇게 한데 모으셨단 말입니까.”
“때가 되면 자네들에게 다 물려줌세.”
자네들이라는 복수에 방점이 찍히기는 했지만 솔깃한 소리다.
금원이 청국사정에 대해 물었다.
“태평천국의 난은 요즘 상황이 어떻습니까?”
“지난해만 해도 중국 전역을 다 휩쓸 것 같았는데 요즘 들어 주춤하는 모양입디다. 내분이 문제인 것 같소.”
“태평천국이 엄밀히 말해서 반청복명은 아닌 것이지요?”
“그렇지, 청에 반기를 들었지만 명나라를 재건 한다는 것은 아니지. 한족 중심의 반청이기는 하지 복명 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지. 더군다나 종교가 게재돼 있으니….”
“대감, 듣자니 조선 땅에서 복명을 꿈꾸는 그런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수 있겠지, 만동묘라는 사당이 있는 것을 보면…”
우선 대감은 그리 놀라지 않고 있었다.
우선은 추사와 마찬 가지로 청나라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던 이였다. 그런 그도 청나라에대해 사망 선고를 내리고 있었다. 흥미있는 것은 한나라의 수명이 2백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 이었다. 그런 점에서 조선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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