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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7회

안 동일 지음

 보은의 징치

현봉이 중심에 서서 논의를 진행했다.
최소한 김만기에게 만큼은 뭔가 치도곤을 안기자고 결론이 났다.
지금의 사정으로 더 이상은 무리였다, 그나마도 고생원은 마땅치 않아 했지만 계원들이 적극 찬동하고 나섰다.
하지만 김만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장 고생원과 향촌계 쪽이 지목 받게 되는 상황이기에 그에 대한 고려도 있어야 했다,
“생원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어쨌든 앞장서는 것은 이선달과 저희들입니다,”  현봉이 고생원에게 다짐받듯 얘기했다.
“선달 조카도 김만기가 알려면 얼마든지 아는 인물인데… ”
현봉이 일을 밀어 붙이는 것은 필제에 대한 시험의 의미도 있다고 금원은 이내 직감했다. 거사는 김만기가 괴산 화양서원으로 가는 길에서 벌이기로 했다. 아무리 자경단 놈들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해도 화양동 입구가 워낙 길고 굽어서 다 관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만기를 태운 교자연이 저만큼에서 보였다.
그 작자는 설마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하고 아무도 보지 않건만 의기양양하게 거드름을 피우며 숲길로 들어섰다. 교자꾼 두 사람에 하인 한명 뿐이었다.
탈을 쓴 필제와 현봉이 그들 앞에 순식간에 나타나 소리를 질렀다. 두 사람의 손에는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을 뿐 살상무기는 없었다.
“이놈들 멈춰라.”
현봉의 목소리는 워낙에도 컸다.
“누, 누구냐?”김만기는 말도 끝내기 전 어이쿠 비명을 지르며 교자에서 떨어져 나 뒹굴어야 했다.
교자꾼들이 두 탈 바가지가 척 나타나 고함을 지르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자를 내팽겨 치고 언덕 아래로 냅다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연 잡이 하인 녀석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현봉이 주장자 지팡이를 들어 올리자 걸음아 날 살려라고 내뺐다.
“누 누 구요? 무슨 일이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겁에 잔뜩 질려 한마디 한다.
현봉이 주장자로 놈의 어깨 죽지를 한 대 내려 쳤다.
“아이구 나 죽네, 왜들 이러시오.”
“숭정대부 네놈의 연이 탐나서 그런다”  현봉이 탈 안에서 굵직한 목소리를 냈다.   필제의 박달나무 목검이 놈의 어깨를 호되게 내리쳤고 명치를 제대로 찔렀다.
비명도 못 지르고 놈은 혼절했다.
김만기는 그날 지옥구경을 제대로 했을게다.
필제와 현봉은 놈을 발가벗겨 재갈을 물려 나무둥치에 묶어 놓고 주변에 음식 찌꺼기를 던져 놓았던 것이다. 교자는 토막을 내 저만큼 언덕 아래로 던져 놨으니 사람들이 올라온다 하더라도 찾기에 여간 애를 먹을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 김만기는 산짐승들한테 얼마나 시달림을 받을 것인가. 얕은 산 이라서 맹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음식 먹는 잡식성 동물과 곤충은 사람을 벌레 보듯 했던 놈을 충분히 괴롭히고 남았다.

한양으로 올라가는 현봉을 배웅하고 금원은 필제를 종용해 법주사로 향했다. 함께 복주촌에 가기 전에 법주사 미륵 부처님께 이것저것 빌고 싶었기 때문이다.
떠들레 하면서도 필제는 참으로 아는 게 많았다.
유학 경전도 꽤 읽었고 시문에도 능했지만 그런데 무엇보다 특히 외국의 사정, 청국이며 구라파라 부르는 지구 저편의 소식을 꿰고 있었다. 그 역시 위원의 해국도지를 여러 차례 독파 했단다.
“누님 제 얘기를 들어 보십시오, 세계만방은 지금 정혁의 질풍노도를 겪고 있습니다. 법랍서를 보십시오. 깨친 중간계급이 나서 하층 백성들과 함께 낡고 부패한 귀족계급과 식충이 왕들을 몰아냈습니다. 또 메리견을 보십시오. 왕을 백성들이 직접 선출한다지 않습니까? 우리라고 못할 것 없습니다.”
“그래요? 선달님의 창의와 정혁의 일이 성공해 그렇게 되도록 해보세요.”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당장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빈말로 그럴게 아니라 약속 하시는 거유?”
그러면서 이필은 길에서 금원의 손을 두 손으로 덥썩 잡는다.
금원도 짐짓 지난번과는 달리 오랫동안 잡혀 준 뒤 천천히 손을 뺐다. 그의 손은 여전히 따뜻했다.

천년 고찰 법주사는 미륵 사찰답게 천연덕스럽게 두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 주었다.
천년의 세월인 터에 큰절에는 이런저런 일이 많았고 이런 저런 승과 속 사람들의 허튼 욕망의 터럭이 묻어 있었지만 그것은 큰 흉이 되지 않았다. 하늘처럼 너른 계산의 한 점 홍진이라고 할까.
수백년을 앉아있는 거대한 금불이 금원을 지긋이 내려 보고 있었다. 미륵불이다. 법당 밖에서 뒷짐을 쥐고 있던 필제는 어디로 간 모양이다.
가슴을 먼저 찍고 왼손 오른손 그리고 이마가 법당 마루에 닿았다.
두 손을 귀밑까지 뒤집어 들어 올렸다.
“중생을 다 구하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그러면서 힘 있는 보살의 도를 생각했다.
“진정한 보살도를 행하오리다”
보살도를 행하려면 힘이 있어야 했다.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나무 지장보살’
지장보살은 창을 든 사천왕 같은 필제 닮은 보살이었고, 한손에 노비해방의 전민변정도감을 든 편조스님과 태을스님 같은 보살이었다. 그리고 고생원 처럼 유학에도 조예가 있어 외유내강한 보살이었다. 그래서 금원은 미륵이 더 미더웠다.
메테야 메태야 메트라야 보디삿따 사바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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