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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4회

 안 동일 지음

13. 법주사 동패 고생원

“이 땅의 서얼들이 겪는 설움 많은 인생이지 뭐.”   현봉, 명수아제의  말은  이어졌다.
처음에는 꽤 오랫동안 역관시험을 준비 했지만 장김의 세도정치와 맞물려 그 시험도 부정이 판을 치는 곳이었기에 몇 번의 실패 뒤 작파했단다. 그러다 어느 양반집 집사 일을 하게 됐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으랴 마는 집사일이라는 것이 집안의 하인들 단속하고 가을 추수철이면 외거 마름과 함께 소작인들 에게 도지를 걷는 일이었기에 아재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거기다 만난 상전이 비위 맞추기가 여간 까다로운 인간이 아니었다. 조선의 양반들은 ‘잘 대해 주면 기어 오른다’는 이상한 왜곡에 경도 돼 호통과 욕지거리를 일삼았다.
“잘해주면 이쪽도 성심을 다하지, 그게 인지상정 아닌가. 자신들이 아랫사람들 막 대하고 멸시 하는 것을 합리화 하려는 자기기만 인 게야.”
명수 아재는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금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처자를 만났는데 천민 여종 신분이었다. 도저히 연심을 이룰 수 없더란다. 주인은 자신의 재산이 는다는 생각에서 적극 맺어 주려 했다지만 태어날 아이들이 종의 굴레를 쓸 생각을 하니 그럴 수 없었다.
어미가 종이면 자식은 무조건 종이 돼야 하는 종모법, 그 비인간적인 엄혹한 그런 법이 문제 였다. 집사 명수는 다른 집 여종과 혼인하는 남자 노비에게 꽤 큰 액수의 배상금을 받아 내라는 주인의 닥달에 크게 대들었다가 치도곤을 당하곤 쫒겨나야했다.
포도청 포졸 노릇도 잠깐 했고 다른 집 집사를 하다가 우연히 태을 스님을 만나 아예 머리를 깎았다고 했다. 잘못된 신분 질서를 깨뜨리려 한다는 말에 뒤도 안보고 따라 나섰단다.

안성의 청룡암 진재 스님은 인근의 동패들을 모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많이 보고 싶었네유. 자성행이 이리 고운 보살님 이셨남유.”
서로의 손을 잡는 그 순간 단박에 우리 편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새벽닭이 울기 전까지 이땅 민초들이 처한 현실을 놓고 조분조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렴주구에 시달리는 자신들 처지에 대한 하소연이기도 했다. 역시 조세제 붕괴, 삼정 문란에 따른 관과 양반네의 수탈이 농민 백성을 못살게 하는 최대 요인이었다. 그럼에도 의외로 저들은 온건했다. 법의 테두리에서 호소하고 상소를 올리자는 축이 다수였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곡괭이라도 들고 일어서야 한다는 소리가 나올 법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순박한 농민이어서 그랬는지 금원이 보기에도 너무 착했다.
그런 이들에게 무기를 쥐어 주며 때가 되면 일어서라고 해야 하는 것이 썩 즐거운 일은 아니었지만 결사의 방침이었기에 운은 뗐고 저들의 이해를 구했고 각오를 다지게 했다.

보은 땅에 도착 해 보니 회남면 고 생원 사건은 현 전체에 쫘악 퍼져 있었다.
“생원님은 왜 찾으십니까? 스님들께서.”
길을 물어 보려니 대답들이 퉁명스러웠다.
보은 사람들은 법주사 중들과 만동묘 고지기들이 작당해서 고생원을 관가에 고변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생원님은 댁에 누워계신데 앞으로 꽤 오랫동안 자리보전해야 될 겁니다.”
다들 고생원 걱정을 하고 있었다.
고생원 집은 이내 찾을 수 있었다. 초가였지만 규모도 있었고 깔끔했다.
생각보다 고생원의 상태는 위중하지는 않았다.
옆으로였기는 했지만 일어나 앉을만 했고 정신도 말짱했다.
“이만하시길 정말 다행입니다.”
“바쁘실텐데, 사람들 공연히 번잡을 떨어서는…”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문제의 진원지는 역시 화양서원이었다. 이곳에서 저들의 패악질은 도를 넘어 서고 있었다. 그 앞장에 자경단과 망둥이 같은 지역 인사가 있었다.

고생원은 결사 활동 때문에 지역에서는 표면에 나서는 일을 될 수 있으면 삼갔었다. 하지만 향촌계 사람들은 유난히 그를 의지하고 따랐다. 자신들 편을 들어주는 유일한 식자 양반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횡액은 고생원의 향촌 내 영향력도 있고 해서 그렇게 까지 될 일은 아니었는데 안동 김문의 비위를 건들인 것이 동티였다.
바로 김만기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안동 김문의 끝자락에 속한 인사로 보은 일대서는 권세가 노릇을 하고 있었다. 화양서원 유사, 만동묘 고직 서리 직함도 갖고 있는 그는 방약무인하기 이를 데 없어 나이가 자신보다 한참 위인 고 생원에게도 아랫사람 부리듯 턱짓을 해댔다. 정3품 이상의 고관이나 타게 돼있는 연을 산골 촌에서 타고 다녔다. 좁은 시골길에서 하인을 시켜 ‘쉬 물렀거라 숭정대부 나으리 납신다’ 하는 꼴이란. 정말 없던 밸도 벌떡 일어나 꼴릴 지경이란다.
그것도 당초에는 어디에선가 바퀴 달린 초헌을 구해 와서는 그것을 타고 다녔는데 시골길이 하도 덜컹대니 무슨 얘기를 하다 혀를 깨무는 통에 어깨에 메는 연으로 바꾼 것이었다나.
그런 그가 어느날 문제의 연을 타고 고 생원네 집으로 찾아왔단다. 잔뜩 거들먹거리며 쏟아놓은 용건이 보은 향안을 다시 작성해야 되는데 고생원이 맡아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랬단다.
“고 생원, 당신도 이제 축생들과 그만 붙어 지내고 인간세상으로 나와야 할 것 아니오? 이거 원 집꼬라지 하고는…”
“축생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뭘 그리 발끈하시오, 고생원보고 한 말도 아닌데, 그 일 잘 해내면 내 한양의 종제들에게 말잘 해 참봉자리라도 얻게 해줄지 또 아오. 돈 마련할 형편은 못 될테고..,”
“일없소, 그보다 당신 앞으론 말조심하시오, 축생이 뭐요 축생이.”
“그럼 우리끼리 얘기지만 논빼미에서, 산판에서, 지렁이처럼 구더기처럼 허덕이면서 불평불만만을 일삼는 것들이 사람이란 말이요?”“정말 상종 못할 인사구만, 썩 돌아가시오.”“이런 배은망덕을 보았나. 난 기껏 생각해서 찾아와 기회를 주려 했는데 그걸 모르고 당신 같은 사람이 언제 도유사 어른 만나 뵐 기회 있다고…”
고 생원은 정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정순아 여기 소금 가져와라 정말 못 들어주겠다.”
그리고는 정말 딸이 가져온 소금을 김만기 뒷등에 대고 뿌렸다.
“거름을 뿌렸어야 했는데… 실은 거름통도 가까이 있었는데…”

그랬더니 며칠 뒤 서원에서 사람이 나왔다. 보은 사람들이 부치는 서원 논의 소작 도지를 갑절로 올리겠다는 통보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닷새 뒤까지 향안을 내놓으라는 요구도 함께 해 왔다. 심부름 온 자경단원 청년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받아들일 수 없고 못들은 것으로 하겠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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