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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읽을 거리> 성 베드로 대성전 김대건 신부 성상 설치 전말

가톨릭 사상 동양인 성상 최초…1천개 조각 중 독보적
한진섭 작가 “바티칸 550년 간 빈자리에 딱 맞아…

 뒷모습까지 완벽 조각 감탄… 명문도 한글 서체로 새겨

지난 9월 26일, 한국의 가톨릭 신자에게는 너무도 뜻깊은 일이 벌어졌다.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 에서의 일이었다.   550년 간 빈자리였다.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우측 외벽에 기적이 벌어졌다. 날씨도 청명했던 로마의 9월 중순,  이날 4.5m 높이의 아치형 벽감(벽면을 안으로 파서 만든 공간)을 가린 흰 천이 벗겨지자 고개를 들고 바라보던 사람들이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emozione!'(감동).

갓 쓴 한복 입은 김대건 신부 성상.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하얀 대리석으로 나타난 신부는 이전부터 있었던 듯 그 자리에 딱 들어맞았다. 가톨릭 성인 중 동양 성인의 성상이 설치된 것은 가톨릭 교회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바티칸 곳곳에 설치된 1000 여 개의 성인들 조각상은 전부 서양 사람 조각이어서 더욱 독보적이다.
“조각상이 설치된 곳은 프란치스코, 베네딕토, 도미니코 등 수도회 설립자 성인들의 성상이 모셔진 곳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가장 좋은 명당자리가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 지 500년이 지나도록 빈자리로 남아 있었다는 게 신기했어요. 마치 우리의 김대건 신부를 위해 이 자리를 비워 놓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복한 조각가’로 유명한 한진섭(67)은 김대건 성상 축복식이 거행되는 그 날 눈이 벌게지도록 울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어요. 너무 너무 감격스럽고 말로는 표현 안되는 벅참에 눈물만 쏟았어요.”
그는 특히 “한국 신자들만 알고 있는 김대건 신부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어서 정말 정말 행복했다”며 여전한 감동의 여운을 전했다.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세워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성상 (사진=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제공)

한복 입은 김대건 성상은 2000년 가톨릭 교회의 전통도 바꿨다. 축복식 주례를 담당한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총책임자이자 예술성 장관인 마우로 감베티(Mauro Gambetti) 추기경은 “지금까지는 베네딕토회, 프란치스코회, 도미니코회 등 수도회 설립자 성인상들이 이곳에 세워졌는데 김대건 신부를 시작으로 각 민족과 나라를 대표하는 성상을 성 베드로 대성전에 모실 것”이라고 공표했다.
로마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 덕분이다. 김대건 신부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그는 2021년 바티칸에 장관으로 부임하면서 바티칸에 김대건 성상을 세우고 싶었던 소망을 추진했다. 2021년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성상 봉헌 의사를 밝혔는데 한국 최초 신부이자 순교자였던 김대건 신부를 알고 있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꺼이 허락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기적…이태리 작가에서 한국 작가로 교체

‘누가 만드느냐’가 문제였다. 교황청의 결정이 떨어지면서 가장 바빠진 사람은 바티칸 미술 담당 수석 사제였다. 아시아 최초 성인이 550년 간 비어있던 자리에 놓여지게 되면서 성상 제작 추진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다. 그는 제일 먼저 이태리 작가를 선별하면서 “바티칸 벽감 조각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이탈리아 조각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동을 건 건 유흥식 추기경이었다. “한국의 성인은 한국 작가가 만들어야 정신과 혼이 담겨야 한다”며 바티칸을 설득했다. “한국 조각가가 과연 이 엄청난 조각상을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유 추기경은 강경했다. “한국 성인의 조각은 한국 조각가가 제작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결국 2022년 10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김대건 신부님 조각상 비용을 국내 천주교 모든 교구가 함께 지원하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바티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조각상 제작이 공식화 되었고 한국 작가 찾기가 시작됐다.
강동허브천문공원에 설치된 조각 작품 옆에 앉은 조각가 한진섭.
“바티칸 내세운 3가지 조건 신기할 정도로 맞아”
“어쩌면 제게 일어났던 일들이 결국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 김대건 신부상을 세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최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지난 2년 간 김대건 성상을 제작하고 설치하기까지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몇번을 울컥했단다.
“25세였어요. 순교 하신 나이가…김대건 신부에 대해 공부해보니 담대하고 신앙심이 엄청 깊은 분인데, 뚝심도 있고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면서 포용력도 있고요. 그 담대함과 용기, 그러면서 겸손하고 인자한 그 부드러운 느낌을 표현하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한작가는 김대건 신부 성상 제작을 맡은 건 신기한 일이자 기적의 연속이라고 했다.
바티칸이 내세운 조건은 그를 부르는 듯 했다. 1. 천주교 신자여야 하고, 2. 이태리 대리석 산지인 까라라에서 작업을 해봤고, 3. 구상적인 돌 작업을 해야 했다. 한진섭은 3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 떨어져 추천이 됐다.

한작가는 홍익대 미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1년부터 90년까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경기 용인 삼성국제경영연구소의 조각상 ‘세계를 향하여’, 서울 크라운해태 본사의 ‘해태’ 상,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정의의 가족’상 등이 그의 작품이다. 강원도 대화성당부터 분당 성마태오 성당, 서울 논현2동 성당등 전국 곳곳의 성당에 그가 깎아 만든 제대와 독서대가 있다.

2021년 12월, 바티칸 교황청에서 “성상 제작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제출하라”는 연락이 왔다.
“모든 일이 신기했어요. 저는 사실 48년 간 돌 작업을 해온 조각가지만 사실적인 조각은 안 했어요. 그런데 2년 전부터 우연히 한 성당의 의뢰로 한덕운 토마스 복자상을 조각했고, 대전교구청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김대건 신부 조각상을 제가 제작했었거든요.”
그렇게 바티칸에 낼 서류도 갖춰졌고 대전교구청 성상 제작에 쓰였던 모형을 약간 변형하여 3개의 안을 바티칸에 제출했다.

십자가 든 모습에서 두 팔 벌린 자세로 결정…현장서 신기

2022년 7월, 바티칸에서 1,2차 심사를 통과해 최종 성상 제작 작가로 결정됐다. 두 팔을 벌리고 모든 것을 수용하는 형태의 모형, 가슴에 손을 모으고 있는 형태의 모형, 왼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동적인 형태,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것으로 자세를 교정한 모형 중 최종적으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채택됐다.
처음에는 오른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 자세가 선정됐는데, 설치 장소가 외부인점을 고려했을 때 눈과 비, 바람, 햇빛에 노출돼 시간이 지나면서 색감 등 변형의 우려가 있어 탈락됐다.
“처음엔 어떻게 생긴 공간인지도 몰랐어요. 모형을 가지고 성상이 설치될 현장에 가보니 제가 제출했던 자료가 비례가 벽감에 딱 맞는 거에요. 그것도 참 신기한 일이죠.”

바티칸에서 착수한 첫 번째 업무는 대리석 원석을 찾는 일이었다. 작품의 높이가 무려 3m70cm, 폭이 1m80cm여서 대리석 블록은 그보다 더 커야 했고 길이가 최소 4m 폭이 2m가 넘는 거대한 원석을 찾아야 했다.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 돌을 찾는다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서 한번도 본적이 없는 별 하나를 찾아내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학교 운동장의 몇 배나 되는 넓은 평지에 수천 개의 원석들이 촘촘히 쌓여 있는데 그 중 하나를 골라야 했어요”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 조소과를 졸업하고 10여 년간 카라라에서 작업했던 그의 인맥이 힘이 됐다. 당시 동창들 몇몇은 카라라 교수가 됐고 같이 유학했던 친구들은 지역 유명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 동창이 성상을 만든다”며 발 벗고 돌 찾기를 나섰고, 그렇게 5개월 만에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에서 대리석을 찾을 수 있었다.

“사람 속보다 더 알 수 없는 게 돌 속입니다.”

무늬나 크랙(금)이 없어야 한다. 조각이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미 작업 중이라도 중단하고 새 돌을 찾아야 한다. 가슴을 졸이며 찾아낸 돌은 색상이 아름답고 무늬가 없고 크기도 대리석으로 땅과 닿아 있는 아래쪽을 확인하기 위해 대형 기중기로 들어 올리니 아래쪽에도 금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OK ‘.
“제가 김대건 신부님 성상으로 만든 돌은 미켈란젤로가 작업한 스타투아리오(Statuario) 대리석보다 더 단단하고 색상도 더 하얗고 좋습니다.”

지난 5월부터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됐다. 두루마기 입은 모습을 돌로 표현하는 데 이탈리아 조각가들은 한복의 구조와 모양새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모형을 보고 비슷하게 만들지만 정확한 표현에는 한계가 있었다. 한진섭은 김대건 조각상의 아래쪽부터 가슴 부분까지 한 땀 한 땀 조각을 해 나갔다. 이전 그의 작품에서 볼 수 없었던 정교한 사실 조각이었다.
실제로 김대건 성상은 신발, 한복 바지, 대님에서 영대와 두루마기를 맨 끈에 이르기까지 얇은 천이 바람에 살짝 휘날리는 듯한 섬세함에서는 사실 조각의 극치를 보여준다. 손등에는 피부 속 보이지 않는 뼈대와 혈관까지 표현했고, 손가락 마디의 주름과 손톱도 이보다 더 정교할 수 없을 정도다. 전체와 부분 모두 대리석 조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의 뼈대와 살갗처럼 느껴진다

“동양 최초, 아시아 최초로 성인을 만드니까 어깨가 너무 무거웠어요. 한진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가 문제가 되면 안되잖아요. 베드로 대성전이 망가지면 안되고. 설치 때까지 매일 매일 기도를 드리고 작업을 했어요. 한국에서도 기도와 응원을 보내 힘이 됐고요. 그러면서 저는 느꼈어요. 김대건 신부가 저와 함께 하고 있음을. 분명 제 옆에 계셔주셨어요.”
작업을 하다가 그는 4m 가까운 높이의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단 한 군데도 다치지 않았다. 벌떡 일어나자 주변 사람들이 놀랐고, 그는 이 또한 기적이라고 했다. “김대건 신부님이 떨어질 때도 받쳐주었다”고 믿고 있다.

설치…”김대건 신부가 여긴 내 자리야 뒷걸음질로 들어간 느낌”

“완성되기까지 바티칸 미술 담당 수석 사제가 가장 걱정이 많았는데 결과적으로 박수를 많이 쳐주셨어요.”
9월5일 작품을 설치할 벽감 아래에는 집 한 채도 들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철봉으로 만들어진 기초공사가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대형 크레인으로 김대건 조각상을 들어 올려서 설치를 위해 미리 준비한 벽감 앞에 내려놔야 했다. 이 때 조각은 정확하게 벽감의 중앙에 놓여야 하고 바닥과 180도 수평이 유지되어야 파손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첫 번에 공중에 들려진 조각이 벽감의 중앙에 정확하게, 그리고 살포시 내려왔다.

장인들은 기계를 쓰지 않고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조각을 조금씩 안쪽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그 날 일꾼들도 바티칸 직원들로 전원 교체되었다. 벽감 안에 넣는 작업 방식은 2000년 전 로마시대부터 사용했던 비누칠 방식이라고 했다.
신기한 일이 또 벌어졌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벽감 안에 쏘옥 들어갔어요. 너무 밀어 넣으면 빼지도 못하는데 한 번에 수평도 딱 맞았고, 마치 김대건 신부님이 ‘여긴 내 자리야’ 하며 뒷걸음질해서 들어간 느낌이었어요.”
그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딱 맞았다”면서 “정말 신기하고 기적 같은 일”이라면서 또 뭉클해 했다.

생생한 25세 청년 신부 부활…가장 어려웠던 건 얼굴 조각

머리에 쓴 갓부터 얼굴을 거쳐 갓끈과 두루마기와 저고리의 동정, 두루마기를 묶은 끈, 옷고름, 턱 밑에 단단히 묶은 갓끈, 양팔을 벌린 한복의 자연스러운 주름, 매끈한 영대. 마치 대리석에서 꺼낸 것 처럼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살아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정점은 얼굴이다.
그는 25세에 순교한 ‘청년 김대건 신부’를 표현하고자 했는데 얼굴 조각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얼굴에는 이목구비와 외모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 성인의 혼을 담아야 했다.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고, 용감하며, 담대한 모습에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성품과 영혼까지 불어넣어야 하는데, 정말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와 함께한 서양미술사학자인 고종희 한양여자대학 명예교수는 “잘생긴 코, 살짝 다문 입에서 성인의 기백이 느껴졌다.마지막 화룡점정은 눈동자”라면서 “그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은 김대건 신부의 용감함과 담대함 그리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눈을 통해 완성되었다”며 “한진섭은 김대건 신부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까지 보여준 것”이라고 극찬했다.

성상의 백미는 또 있다. 뒷모습도 아름답고 정교하게 조각됐다. 이태리 조각가들은 뒤는 안보이니 대리석 그대로 둬도 된다고 했지만 한진섭은 뒷모습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곱게 떨어지는 도포자락에 묶은 끈의 주름까지 그대로 실제처럼 보인다.
좌대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위상을 전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라는 명문이 훈민정음체를 응용한 서체(디자이너 김진선)인 한글로 새겨졌다. 원래 영문 서체도 김진선씨의 서체가 쓰여질 예정이었지만 바티칸이 원한 ‘Times New Roman’서체로 바뀌었다. 이 몇 줄의 명문이 결정되기까지도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왼쪽에는 프란치스코 교황 문장이 찍혀있다.

“요즘 페이스북에 보니 사람들이 바티칸에서 보고 찍은 김대건 성상 사진이 많이 올라오더라고요. 대한민국 자부심이 느껴진다는 글과 함께요. 작가로서 저도 자부심도 느끼고 역사적인 일입니다. 제가 1981년에 유학 갔을 때는 못사는 나라라고 업신여겼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우리나라 국력은 강국입니다.”

한국 작가 최초로,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조각상을 세우고 돌아온 그를 위해 서울의 가나아트센터가 10년 만에 한진섭 개인전을 열었다. 많은 사람들과 이 감동을 다시 나누고 인간애와 사랑이 넘치는 한진섭의 예술세계를 조명한다. 바티칸에 설치된 것과 동일한 형태의 60cm 크기 김대건 신부상을 비롯해 바티칸에 제출했던 네 가지 구상 모형과 소품 위주의 성상(聖像) 조각등 약 30여점을 내년 1월14일까지 선보인다.
한진섭은 “작고 두 번 하니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60cm 크기 성상 작업이 더 어려웠다”며 “이 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바티칸의 김대건 신부의 성상이 내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지금도 정말 그 거대한 성상을 어떻게 만들었지 싶다”는 그는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 채 연신 “기적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한진섭은 김대건 신부를 만들려고 태어났다’ 이렇게 밖에 생각이 안 들어요. 조각가로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밀알이 떨어지기만 하면 한알에 머물지만 그 밀알이 죽으면 여러개의 밀이 태어난다는 성경의 말씀 되뇌이게 된다.   (안지영기자)

(공감 언론 뉴시스 박진희 기자 12월 16일 기사 다수 참조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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