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동일 지음
10. 응무소주 이생기심
태을 스님과 인주의 부축을 받으며 동사에 돌아 온 금원은 처소에 들자마자 다시 쓰러져 며칠을 끙끙 앓아야 했다. 몇대 맞지 않았다고 해도 멍석을 뒤집어쓰고 맞았기에 멍이 전신으로 퍼져 있었다. 지하옥에 있을 때 보다 더 아프고 쑤셨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하지 않던가. 간만에 푹 쉬면서 몸 좀 추스르게나.”
스님은 손수 토굴 뒷산 금암산에서 캐온 하수오를 다려줬다. 전보다 스승의 인자함을 한층 더 애틋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몸과 마음 모두에 휴식이 필요했다. 어찌보면 철 들고 나서 처음으로 가져보는 휴식다운 휴식이었다. 사람 몸이라는 것이 이처럼 귀하고 살아 있음이 다행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니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물위를 걷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스님의 말이다. 겪어 보니 가슴에 와 닿는 맞는 말이다.
여주 지하옥에서 나오던 날, 동사로 함께 돌아오면서 태을당은 자신의 얘기를 금원에게 들려줬다.
널바위 언덕길을 오르려는데 다람쥐 사체가 눈에 띄었다. 스님과 인주가 사체를 한쪽 나무 밑에 묻었다. 금원은 몸을 구부리기 힘들었다.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 태을당이 무심한 듯 입을 열었다.
“우연히 황해도 장연 널다리에서 양반에게 매 맞아 죽은 농부의 시신을 염하고 매장까지 한일이 있었다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 평생 고생만 하다 죽은 그 농군의 시체를 묻으면서 그날 내 길이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네.”동물의 사체이지만 매장해 주려니 문득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평생 따듯한 밥 한번 못 먹고, 수의도 없이 맨살로 이렇게 죽으려고 태어났는가 싶으니 세상이 원망스럽고 세상을 그렇게 만든 양반네들이 증오스럽기까지 하더군. 그러면서 매골승 편조스님의 심정이 그대로 이해되는 것 아니겠나.”
편조스님이 기를 쓰고 권력을 잡으려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는 말이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것이다.
“나도 세상을 위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사람을 모아야 겠구나 싶었지. 그래서 사람을 만나러 먼저 간곳이 상두계 였다네. ”
스승이 상두계와 그 계원들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그러면서 당신의 얘기가 조분조분 이어졌다.
종모법에 의해 노비가 돼야 했던 만성은 아비가 누군지 몰랐다. 명석한 만성은 주인집 아들풍석의 눈에 들었고 그에게 글을 배웠다. 그가 바로 추사의 절친한 동문 선배 였다. 젊은 주인 풍석의 배려로 스물한 살 되던 해 면천이 됐다. 그때 서씨댁을 자주 왔던 어느 식객이 만성의 부친이 임씨성을 가진이 였다고 해서 임씨 성을 가졌다. 만성은 그 무렵 제 갈 길을 마련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역시 풍석에서 비롯된 길이다.
백권이 넘는 대작인 백과전서 임원경제지를 집필하면서 만성에게 시킨 심부름 때 맺은 인연 이었다. 풍석은 글을 깨우친 만성에게 중요한 심부름을 곧잘 시키곤 했다.
만성의 성정과 재주를 간파했던 향적이란 법명의 용화종 스님이 바로 만성의 거처요 갈길 이었다. 황해도 은율의 향적은 농사 일, 특히 채소 재배에 관한 일가견을 지닌 승려였지만 실은 숙종 연간 미륵사상으로 정혁을 기도했던 여환 스님의 숨겨진 제자였다. 여환과 동지들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는 살아남았다.
향적 스님이야 말로 신돈을 숭상하고 있는 이였기에 만성도 이내 영향을 받았다. 노비에서 만인지상에 오른 이야기는 똑똑한 청년노비 임만성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스승 향적이 만성에게 태을이라는 불명과 함께 준 책이 바로 편조행장록이었다.
서는 위치가 달라지면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는 것은 분명한 이치였다. 만성에게도 이 이치는 그대로 적용됐다.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눈으로 목격하고 피부로 느끼면서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은 만성은 자신도 호사를 누린 것은 아니었음에도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만족한 돼지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금원도 느꼈던 바로 그 생각이었다.
사제는 동사길을 접어 들면서 미륵 하생주를 간절히 암송했다.
‘메테야 메테야 메트라야 수바타 보다삿따 사바하’
‘미륵이시여 자비원만 미륵보살이시여 현생을 기원하며 귀의합니다’
삭신은 아직 간간히 쑤셨지만 책 읽는 일은 금원에게는 활력과 즐거움을 주는 일었다. 초가였지만 동사 서각에는 읽을 책이 무척 많았다. 실학 서적과 불교 쪽 책에 손이 갔다. 보왕삼매론의 경구는 자신을 향해 들려주는 경구였고 몇 번이나 읽었던 금강경은 마침내 가슴으로 읽혀졌다.
“노승이 삼십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었다.’ 그 뒤 선지식을 만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물은 물이 아니고 산은 산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마지막 쉴 곳인 깨달음을 얻고 보니 ‘산은 진정 산이고 물은 진정 물이도다.”
당나라 때 임제종 청원유신선사의 상당법어다.
스승 태을스님은 바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가르침이라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상계는 자성이 없는 허상의 세계이지만 인연으로 인하여 분명히 존재하는 세계이므로 집착 없이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스승은 명쾌하게 해석했고 금원도 이를 가감 없이 받아 들였다.
그러면서 역대의 많은 조사들이 출가해 수행하면서 속세에 대한 집착을 놓는 모습은 보여주었지만 세상 속에서 중생들과 더불어 살면서 그들을 구제하는 대승 수행자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귀가 번쩍 뜨이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승은 참된 수행자 라면 세상의 공한 이치만을 깨치려고 노력할 것이 아니라 공한 세상을 열심히 값지게 사는 방법 또한 깨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기에 금원은 속으로 박수를 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