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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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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8회

안 동일 지음

널바위 언덕의  위기

금원이 정신을 차린 것은 송파에서 여주의 조포나루로 가는 배 안에서였다.
진작 정신이 들었지만 금원은 내색하지 않고 정황을 살폈다. 눈이 가려져 있고 결박되어 난간에 묶여 있었지만 흔들림과 물소리, 그리고 저들 사내들끼리 하는 소리를 듣고 배 안이라는 것과 행선지를 알 수 있었다. 경강 일원 자경단은 공동으로 큰 배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름께나 있는 큰 서원들은 하나같이 강과 나루가 있는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리 끌고 가는 것으로 보아 일단 쉬 죽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죄를 지은 적이 없음에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소 안심이 된다.

여주의 조포 나루라면 고산서원으로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저들이 서원이름 까지 말하지 않았지만 조포나루를 통해 포동의 서원으로 간다고 했다. 여주 포동의 고산서원은 금원도 전에 가본 적이 있는 경치 좋은 서원이었다. 정면에 남한강이 흐르고 좌우에 나지막한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곳이다.
고려 말의 유학자 이존오(李存吾)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배향된 이존오의 성정만큼 강직한 서원으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근자에 들어 장김 서원들과 교류하면서 민폐 서원으로 전락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 왔었다.

그런 서원에서 왜 자신을 찾는단 말인가. 자신을 끌고 간다는 것은 뭔가 원하는 것, 알고 싶은 것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미륵종단과 청계에 관한 일이건 추사 김정희 대감에 관한 일이건 간에. 심각한 고문이라도 해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사실 큰 조직인 청계에 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미륵절 낭가계 보다 더 큰 조직이 있다는것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또 동사와 부용사가 신돈을 기리는 미륵절 이라는 것도 공식화 된 것은 아니었다. 미륵 그리고 신돈 하면 권부의 주목을 받고 취체와 체탐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러내 놓고 편액을 걸 수는 없었다. 대충 구성원 신도들 끼리 암암리에 알고 넘어가자는 그런 모양새였다. 그래서 용화종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용화는 미륵이 내려온다는 용화세계에서 따온 말 이다.

“부용사 동사 패 중에는 남정네들도 많을 텐데 다 놔두고 저런 아녀자만 끌고 가는 게 가당한 일인감?”

“다 총관님 지시 사항일세, 우린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아래쪽에서 사내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사위가 조용했기에 위에 묶여있는 금원에게 다 들렸다.
“그나저나 어제 무술 훈련 때 맞은 어깨가 많이 쑤시는데…”    “그러니 우리같이 몸으로 먹고사는 인생, 무엇보다 맷집을 길러야 돼”
사내들은 금원에 대해 알고 있었다. 눈치로 보아 용화종과 관련해서 무언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표면적으로 용화종은 관에 척을 지지 않고 있었다. 현봉은 양주목 아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긴 그들이 관의 전부는 아니었다.
설마 죽기야 하겠냐, 한번 부딪혀 보자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길이 있다지 않는가 싶으니 각오가 생겨난다.

조포나루에 닿은 모양이다. 나루에 횃불을 밝혀 놓았는지 눈가리개 위로도 환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시오”
금원은 배에서 내리자마자 결박당한 채 큰 자루 속에 넣어져 등짐처럼 부려졌다. 한참 만에 언덕을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금원을 메고 언덕을 올라가던 사내들이 누군가와 마주쳤고 떳떳치 못했던지 몸을 숨기는 기색이 금원에게도 느껴졌다.
이윽고 어느 큰 가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금원이 자루에서 풀려 난 곳은 흙냄새 짙은 어느 헛간 이었다. 사내들은 금원을 의자에 앉히고는 다시 묶었다. 말로만 들었던 고신 의자였다.
그리고는 혼자 놔두고는 모두 나갔다. 눈이 가려져 있는 것이 엄청난 공포를 불러왔다.

한참을 궁리하고 있으려니 문 열리는 소리가 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두 명은 넘는 것 같았다.
“눈가리개 풀어줘. 손도 풀어주고.”
차분하지만 약간 쉰 듯한 중년 사내의 목소리였다.
“예 총관 어르신.”
명령한 그 자가 바로 총관인 모양이다.
눈가리개가 풀렸지만 한참 만에 사위가 눈에 들어왔다. 큰 저택의 헛간 느낌이 들었다. 헛간은 거의 관가의 취조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다행스럽게 특별한 고문기구는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사내가 금원의 앞에 앉아 있었고 두 사내가 옆에 서 있었다. 모두 흑의를 입고 있었다. 얼굴 수건은 쓰지 않고 있었다. 가운데 앉아있는 옅은 수염의 선비풍 중년이 총관인 모양이다.
“삼호당이라고 부른다지, 기생 김금앵.”총관이란 사내의 첫마디였다.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
뭐라 대꾸 할 수가 없었다.
“그쪽이 윤씨와 길씨가 아닌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까지 막무가내인 줄은 몰랐소.” 윤씨와 길씨를 아는 것으로 보아 역시 글줄께나 읽은 자였다. 그것도 꽤 깊이.
“나를 어찌 알고, 어떻게 알았기에 그리 폄훼 하십니까? 내 호경에 살지는 않았지만 세상 이치와 도리는 알고 있습니다.”
굳이 사나운 언사를 써 상대를 자극할 필요는 없다 싶어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나이도 위로 보였다.
금원의 대답에 사내의 표정이 일순 변했다. 놀랍다는 눈치다.
윤씨와 길씨는 예법을 아는 여인네를 일컫는 말이다. 都人尹姞(도인윤길) 이라는 고사성어에서 나온 말이다. 윤씨(尹氏)와 길씨(姞氏)는 주(周)나라 때 왕실과 혼인했던 대표적 세족으로 당시 사람들이 예법 있는 도성의 부녀자는 전부 윤씨와 길씨라고 했다는 시경의 얘기에서 나온 말이다. 호경이  주나라의 도읍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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