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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7회

 안 동일 지음

사충서원

또 흥미를 끄는 것은 각 지역마다 주시하고 있는 인사가 있는지 그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꽤 장황스레 거론했다. 아마도 요시찰인 모양이었다.
저들은 오가작통제와 연동해 전국의 이른바 불온 인사들을 상시로 감시하고 있었고 이들의 활동은 즉각 비변사의 장김 무리에 보고되었던 것이다,
저들은 자경단의 체탐을 통해 일종의 인재 발굴 까지 해내고 있었다. 조정 내에서 자신들의 손발이 될 벼슬아치를 뽑고 있었던 것이다. 지역 내 누가 유망하고 똑똑한 인물 이라는 것을 알아내면 이들은 장김의 포섭과 회유의 대상이 됐다. 그들은 그 지원을 바탕으로 매직을 하거나 급제라도 해서 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벌열을 대표하는 장김의 주구노릇을 해야 했다. 무슨 일이나면 성균관과 삼사 그리고 지방의 서원에서 빗발치듯 올라오는 장김을 엄호하는 상소들은 다 이들이 하는 짓이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얘기가 있었다. 패총관이 각별히 불교쪽 특히 미륵종파의 불온한 움직임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대목이다.

그러면서 저들은 저마다 서원동맹, 다시 말하면 장김과 노론벌열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노론의 정권 존속만이 이 나라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자기 최면들을 걸고 있었다.
“요즘 원상회의의 지시사항 때문에 각 지부가 모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소.”
“예 정신이 없습니다. 패총관님”“이럴수록 우리 통문계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아야 될 것이오.”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사이가 있었다.
“우리는 이 나라 최고 기구인 비변사의 순검부 기능을 맡고 있는 조직이오. 거기에 유림 최고 어르신들인 원상들께서 우리를 주시 하면서 기대를 보내고 있소이다.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갖고 소임에 충실하도록 합시다.”

패총관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자경단은 장김 독재의 적토마였고 언월도였다.
저들은 최근에 들어 백성들을 더 쥐어짜고 있었다. 분담금 때문인 모양이다. 분담금이라면 상위 큰 조직에서 하위 작은 조직, 또는 참여 조직에 지우는 책임 액수를 말하는 것 아닌가. 원상회의 라는 말이 나오고 천하의 장김이 분담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장김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어떤 그림자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7. 널바위 언덕 위기

장시가 열리는 천호리에서 춘궁리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질릴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다. 금원은 천호리 시장에서 종이를 사 오는 길이었다. 다른 식재료나 옷감 등속은 천동아범이나 한처사가 사왔지만 종이만은 금원이 직접 구매했다.
구룡언덕의 그 일이 닷새전 이었기에 며칠 만에 이 길을 다시 걷는 셈이었다. 추석이 바로 코 앞 인데도 한낮의 땡볕은 여름처럼 더웠고 어스름 저녁 무렵인데도 더위는 가시지 않았다. 심한 가뭄이었다. 그러니 백성들의 삶이 더 말이 아니었다.
사색 붕당이 조정과 나라를 망쳐먹었다고 한다지만 세도정치는 붕당에 비할 바 아니었다. 당쟁은 타당의 눈치라도 보고 명분을 따지고 염치라도 지키려 했지만 세도정치는 염치도 체면도 없었다. 그저 먹고 보자, 쥐어짜 보자였다. 근자에 들어 쥐어짜는 강도가 더 해가고 있었다. 금원은 땀에 젖은 베수건을 쥐어짰다.
손끝이 아직 따끔거렸다. 그날 박힌 작은 점 같은 가시가 아직 박혀 있는 모양이다. 바늘로 파낸다고 파냈는데도 그랬다.

잠실도회가 설치 돼 있었던 동잠실의 뽕나무 밭이 거지반 쇠락해 있었다. 가꾸지는 않고 수확만 해대니 어떤 작물이건 배겨 낼 수 있으랴. 둔촌리를 지나면 나오는 감골의 감나무들에서는 까치밥 하나 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제대로 영글어 보지도 못했을 텐데…
사실 아무리 흉년이 들었다 하더라도 장김과 탐관오리들의 수탈만 없다면 백성들이 저토록 주릴 이유가 없었다.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나누면 배를 주릴 지경은 아니었다. 이앙법의 보급으로 논의 소출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던 것이 백년 전 일이다.
상업과 무역도 전대에 비해 꽤 발달해 있었다. 중국 사람들 조선의 인삼을 그리도 좋아했고 조선산 짐승 모피와 가죽, 그리고 삼베와 한지 닥종이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고령토와 철광도 비싼 값에 거래되기에 중인 부자들이 여기저기 등장해 있었다. 하지만 장 김의 비호와 연대에 속한 자들에 국한한 일이다. 그랬다, 맹자님도 백성은 주린 것 보다 고르지 않은 것에 더 화낸다고 했는데…

널바위 언덕에 다다랐을 때 어스름 저녁 빛이 돌기 시작했다. 오가는 행인이 급속히 줄어들었고 문득 불안감이 엄습했다. 내중 다니던 길이었는데도 그랬다. 꼭 누군가 뒤를 쫒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걸음 떼면 바스락. 멈추면 조용했다. 너무 예민해진 모양이다 싶어 걸음의 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그런데, 불길한 예감은 적중하는 법인지 언덕을 팔부쯤 올랐을 때 뒤에서 후다닥하는 소리가 들이더니 검은 복면을 한 괴한 셋이 금원의 앞을 막았다.
“꼼짝 마라, 김금원.”
복색이 닷새전 그날 낮에 구룡언덕에 나타났던 사충서원 패와 같은 검은색 일색이었다. 어느 서원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경단이다. 이들은 진검을 뽑아들고 있었다. 대나무 지팡이 안에 칼날이 숨겨져 있는 횟대검이었다.
“무슨 짓 들이요? 썩 물러 서시오. 나는 당신들이 누군지 알고 있소”
금원의 목소리는 찌렁찌렁 언덕에 메아리 쳤다.
“안되겠군. 천박한 기생 출신 주제에 겁이 없어.”그리고는 금원은 정신을 잃었다.
가운데 괴한이 칼 손잡이 대봉으로 금원의 명치를 순간적으로 가격했기 때문이다. 자경단 저들은 명치가격을 특별히 수련하는 모양이다.
놈들은 쓰러진 금원을 들쳐 업고 왔던 길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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