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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15회

안 동일 지음

6. 사충서원

경기도 과천, 노들나루가 내려다보이는 한강변 사충언덕이야 말로 장김의 성지였고 아성이었다. 그곳에 안김의 문중서원이 돼버린 사충서원이 있었다.
도조전이라 현판이 걸려 있는 도유사(원장)실. 서원 제일 높고 깊숙한 곳에 위치한 전각이다. 노들나루 노량진과 강 넘어 도성이 한눈에 들어왔다.
안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합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합하라니…
“무리라고 해도 이번만은 꼭 제때에 해내야 하네, 지난번에 기간 내에 목표를 채우지 못
해 내가 젊은 사람들 앞에 얼마나 면구스러웠는지 아는가?“
아랫목 보료 위에 앉아 있는 잘 차려 입은 초로의 선비가 좌상인 모양이다. 주위에는 노소의 선비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평복을 입었지만 하나같이 고급비단에 한껏 멋을 낸 티가 역력했다.

“아닙니다. 청주의 화양 에서도 여주의 고산에서도 이번 할당은 무리라고 하고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기정사실이 되기 전에 조정을 해야 합니다. 숙부님.”
“허허. 예판 이사람, 몇 번 말했나, 불가역적이라고, 그 얘기는 그만 함세.”
합하라고 그랬다가 숙부라고 그랬다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리고 예판은 또 무언가.
“그 많은 돈을 어디다 쓰려고 하는지….”
“혹 반청복명의 일 아닙니까?“
“쉿, 이 사람이…”
중구난방이었다지만 말이 어째 이상했다. 반청복명이라면 청을 몰아내고 명을 다시 세운다는 얘기인데 조선 땅 서원에서 나올 말은 아니다. 거기다 거금의 돈을 쓴다는 얘기라면 더욱 이상하다.
그때 하릴없는 쥐상의 사내 한명이 들어왔다. 집사 일을 하고 있는 유사다.
원장 앞에 부복을 하고 고개만 바짝 들더니 한마디 했다.
무슨 왕실도 아니고 부복을 한단 말인가.
“전라 좌수사로 나가 있는 천가 호신이 이번 가을 제향 제수에 보태라고 벼 오십 섬을 보내 왔습니다.”
“그런 일 까지 합하에게 보고한단 말인가? 자네도 참 답답하이.”
옆에 있던 인사가 퉁박을 줬다.

“그것이, 그 일뿐만 아니라 전부터 꼭 도유사 합하께 아뢸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데 그러나?”
“천 수사 뿐 아니라 여러 곳 무반들의 한결같은 민원입니다.”
“민원?”
“저들이 일개 백성도 아니면서 민원이라…”
“그래 뭔가?”
“춘추 향제사 때 무반들의 자리도 대청 쪽 몇 자리 할애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이 계속 빗발치는 통에…”
“무반들이 뭐 그리 우리 할아버님께 의리가 있다고 그러누?”
“몇몇은 그 일이 성사 되지 않으면 부조를 할 수 없다고들 하는 통에…”
“뭣이 부조라고? 이런 무엄한 자들을 봤나? 저들은 이 나라 관리, 이 나라 백성 아니란 말인가. 이 나라가 누구 때문에 건사 됐는데…”

“그리 흥분만 하실 일이 아니오 예판 ”
“저들도 서럽긴 했을거요.”
“그래서 내 전에도 말하지 않았소. 무반 위패도 하나 배향하자고…”
“그거 좋은 생각이오. 형님”
“무슨 소리 무반의 사당도 아닌데 격 떨어지게…”
“그래요 신분질서는 이 나라의 근간입니다. 근간.”
의론이 분분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형님이라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도제전이란 현액도 그렇고 이들이 아까부터 사용하는 합하라는 호칭도 최소한 의정부 영의정에게나 쓰는 경칭 아닌가. 그럴 만큼 행정구역상으로는 과천에 속하는 노량진, 노들나루 언덕 위의 이 서원은 괴상한 곳이 되어 버렸다.

이곳 사충 서원은 신임사화 때 사사된 노론 네 신하의 위패가 있어 사충이다. 영조 임금이 자신을 옹립하려다 희생당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즉위하자마자 건립을 명했다.
그후 안동 김문의 세도정치가 시작 되면서 주 배향자 김창집은 희대의 충신으로 추앙되었고 이곳의 존재가치가 높아졌다. 안동 김문의 성지가 됐던 것이다.
나랏님 옥새보다 이곳의 인장인 조가 더 무섭다는 바로 그곳이다. 원장 도유사가 바로 김좌근. 지금의 임금 대에만 영의정을 두 차례나 지낸 안동 김문의 좌장이다.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그의 바로 손위 누이다.
그를 위시해 안동 김문 세도가들이 오늘 도유사실에 모두 모여 있었다. 좌근이 모처럼 도유사실에 행차를 했기 때문이었다. 김좌근은 엊그제 영의정직을 사직하고 비변사 도제조 직만 지닌 채 이곳 서원으로 내려 왔다. 김좌근이 사충으로 간다고 하자 조정에 있는 일가붙이 형제 조카들이 환송 겸 해서 모두 따라 내려 왔다. 저들도 이곳 유사 직함을 갖고 있었다.

면면을 보면 이조판서 병기는 좌근의 아들, 호조참판 병학, 부제학 병국, 형조판서 병교, 예조 판서 병국은 병자돌림 조카들이다. 대사헌 형근은 사촌, 대사성 호근은 육촌동생이었다. 사충서원 유사회의가 아니라 이 나라 최고 권부라는 비변사 회의를 해도 거의 이 면면 그대로였다. 비변사는 임란 때 만들어진 문무합동 비상기구 였는데 장김이 자신들 편의에 의해 부활시켜 의정부를 무력화 시키면서 전횡하는 기구였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진상하면서 겨우 오십 섬 밖에 올리지 않는단 말인가?”
“요즘 영산포 형편이 녹녹치 않은 모양입니다.”
“형편은 무슨 형편, 정성이 문제지.”
“언제 형편 좋은 적 있었나?”
“맞아요, 세상에 남는 시간 남는 돈은 없는 법이지.”
“무반 수사직이라도 그게 어디인가, 자고로 벼슬이라는 것이 20만 가운데 천, 2백대 1의 경쟁을 뚫고 차지하는 것인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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