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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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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7회

안 동일 지음

금원의 삼천배

下心(하심)에 차있던 금원은 쇠락한 곳이기는 해도 여남은 명 대중이 있는 곳이기에 정주간 공양주 보살이나 정통과 소지의 소임을 맡겠다고 나섰다. 절집에서 정통은 해우소 청소, 소지는 법당이나 요사채 청소하는 소임을 말했다.
“아닐세 자네는 공부와 글 쓰는게 어울리는 사람이네”
큰 스님은 금원더러 明燈(명등)을 맡아 종단의 필객 일을 하라고 했다. 명등은 등불을 켜고 끄는 소임을 말하는데 이 절에서는 서책과 서찰까지 관리하는 모양이었다.

스님도 금원의 시집 ‘호동서락기’를 읽었단다. 스님은 자신이 입산 출가했던 원찰 금강산 유점사 부분이 특히 좋았다고 했다. ‘밖의 백성들은 주리는데 산속 중들이 선경 속에서 배불리 먹고 있다’는 부분이 그랬단다. 호동서락기는 금원이 열네살 때 금강산을 둘러보고 쓴 시를 묶은 시집이다.
금원에게는 그런 맹랑한 시절이 있었다.
명등이자 필객으로 때론 공양주 보조로 절 살림을 도우면서 새롭게 불교 공부를 시작 했다. 스승 태을 스님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보살의 정신을 강조했다. 화엄과 미륵사상을 융합한 독특한 불교 였다. 알고보니 동사의 불교, 태을의 불교는 고려말 개혁승 신돈의 불교였다. 미륵동사가 폐허가 된 것도 신돈의 몰락과 관계있다고 그곳 사람들은 말했다.

경각(經閣)을 겸한 서방으로 쓰이는 뒷방에서 책들을 정리하는 일은 금원의 소임이었다. 서방 정면 벽에는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초상은 많이 낡기는 했지만 채색과 내용이 화려 했다. 국사쯤 되는지 금박이 장식된 승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잘생긴 청년 스님의 모습이었다. 정면 초상이 아니고 약간 돌아서 있는 전신 초상이다. 분명 남자스님인데 작은 고깔을 쓰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을해개벽 낭가결사 시창주 청한거사 편조 대종사 근영’
거사이면서 대종사라…

그때 노스님이 안쪽에서 금원을 불렀다. 스님은 틈만나면 그곳에서 두꺼운 한문책을 언문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셨다.
금원이 앞에 앉자 스님이 입을 열었다. 스님의 손에는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 들려있었다.
“편조스님 신돈을 어찌 알고 있는고?”
“고려를 망하게 한 공민조의 현승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요승이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지만 들은 말이 있기에 숨을 고른 표현이었다.
“허허 대개들 그렇게 알고 있는데 그것이 잘못 알려진 게야. 그래서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
“역시 제 알음이 짧았군요”
“스님이야 말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각고면려 끝에 득도하고 중생 속으로 들어 간 참 보살이라고 나는 믿네.”
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어떻게 그런 이가 이 땅에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지, 글도 제대로 깨우치지 못한 무지랭이 천덕꾸러기 중이 백성을 위해 그처럼 큰 뜻을 세우고 또 실행 할 수 있었느냐는 말이지.” 스님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종회가 바로 스님의 그 보살 정신과 평등정신을 이어 받았다네. 말하자면 신돈 편조 대종사가 우리 회와 계의 비조라고 할 수 있다네.”
금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읽어 보도록 하게나.”
‘편조종사행장록’이라는 한문 제목이 붙어 있는 언문 책이었다.
“진흙 속에서 핀 아름다운, 하지만 슬픈 연꽃을 보게 될 것일세.”
여러 뜻이 함축된 말이었다. 동사에 온지 두달쯤 되던 무렵이었다.

며칠 뒤 금원은 낭가총림에 가입하는 의식을 가졌다. 불자들이 대개 받는 오계 와는 다른 미륵계(戒)였다. 그때 불명도 새로 받았다. 자성행. 미륵 부처님의 가르침을 항상 지키며 행하라는 의미다. ‘自省’이란 스스로 가르침을 잘 닦아 불가를 빛내는 미륵의 경지를 체득하라는 의미다.
미륵 보살을 염원하는 계를 받는 날 금원은 다시 태어났다. 수계법회에서 법사들은 미륵을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미륵이 되자고 사자후를 토했고 수계자 낭가들은 눈물로 각오를 피력했다.
“우바이 자성행은 이 땅에 미륵이 오실 것을 앙망합니까?”
서러운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보살이 안 계신다면 한순간도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예”
“미륵낭도 자성행은 미륵부처의 현존을 위해 정진할 것을 서원합니까?”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높은 곳에 뜻을 두고 이곳 사람들과 함께라면 지옥불도 두렵지 않을 것 같았다.
“예”
“우바이 가채 가성행은 미륵의 현존을 믿는 신도들의 결사, 을해계 낭가총림의 맹원이 되어 목숨을 걸고 규약을 지킬 것을 서원 합니까?”동무들과 함께 뚜벅 뚜벅 걸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예”
호법 스님이 옷을 반쯤 내린 금원의 어깨에 불가사리 인두 도장을 찍었다.
살타는 냄새가 났지만 역겹지 않았다. 각오와 원력이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메테야 메테야 메테레야 사바하’  (계속)

  <삽화 담원 김창배 선생의 동양 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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