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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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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노트북> ‘예비역’ 자매님이 본 국군의 날 행사

 안지영 기자

기자에게 여군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것은  81년도 였던가, 어릴적 티비에서 봤던 소총을 맨 여군들의 멋진 행진이었다.
지난 9월 26일 건군 75주년 국군의 날 기념 퍼레이드가 있었다. 10년 만에 열린 군사 퍼레이드다. 추석 연휴 관계로 국군의 날인 10월 1일 이 아닌 그날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 공항에서 기념식을 앞당겨 거행하고 오후 4시부터 서울 시내에서 퍼레이드를 가졌다.

군의 시가행진은 과거 정부에서는 자주 열렸지만, 1998년 김대중 정부  이후로는 각 정부마다 5년 주기, 즉 ‘대통령이 취임한 해’에 한 번만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그 특성상 행사를 준비하는 장병들의 피로도가 매우 높다는 이유가 가장 큰 이유였다.  맞는 말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 2008년 이명박 정부,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시가 행진이 열렸다. 그러나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1년 정도 남긴 채 탄핵 되고, 2개월 뒤 문재인 정부가 취임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당시 부대 관리훈령 313조에 명시된 대로라면 원래는 시가 행진을 해야 했을 2018년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등 비핵화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일 때였다. 그래서 그해 시가행진은 열리지 않았다.
당시 문 대통령이 “평화 기조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장병들의 관점에서도 해석되어야 한다”면서 “기수단과 장병들이 발을 맞춰서 열병하는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 고충을 생각해야 한다. 국군의 날은 장병이 주인이 되는 날이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당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시간이 흘러, 그리고 상황이 바뀌어 한국 국방부는 올해 국군의 날 기념 행사에 퍼레이드가 포함된다며  그 주제를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로 정했다면서  ” 국가수호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천명하고 적 도발을 억제하며 강력한 힘으로 응징할 수 있다는 대북 메시지 표명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한 무력 시위 성격임을 굳이 숨기지 않은 셈이다.

10년 만에 열린 이번 국군의 날 시가 행진에는 4천여 명의 병력이 참가하고, 170여 대의 장비가 나왔다.
그런데 해마다 기자가 국군의 날 행사에서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리는 차례는 여군들의 퍼레이드였는데  이번  퍼레이드에서는 국군 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을 제외하고는별도의 여군 부대 행진이 없었다.  각 군이 혼성으로 행진했던 것이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다. 하지만 여군 시절에도 미 기갑 부대와의 합동 훈련에 참가했을 때 마다 임무 수행의 범위에 있어 남녀 구분 없는 미군들을 보면서 우리 군은 언제 쯤 저런 균형이 이루어질까 살짝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번의 국군의 날 행진에서는 단편적이지만 그러한 균형이 잡혀진 듯 보였다.

여군 출신으로써 라떼 한 잔 들이켜 보면 (‘나때엔 말이야’ 라는 뜻) 소총을 맨 여군들의 퍼레이드는 국군의 날 행사의 꽃이라고도 불리우곤 했다.  말한대로 기자에게 여군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것도 어릴적 티비에서 봤던  반짝이는  소총을 맨  예쁜 여군 언니들의  절도 있고 멋진 행진이었으니 말이다.

기자가 복무했던 1996년, 국방부를 비롯 육군 각 군 사령부 및 육군 본부에서 차출 된 여군들이 성남에 위치한 서울 비행장에 모여 초여름 부터 행사 직전까지 꼬박 넉달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훈련 받곤했다.  K1 소총을 어깨에 매고 하루 8시간, 30도가 넘는 혹서에 아스팔트의 열기까지 더하면 찜질 방에서의 훈련이나 다름 없을 터.

여기에 꽉조여 맨 전투화 속 두 발은 오후 5시 공식적인 훈련을 마친 뒤에야 일단 바깥 공기를 쐴 수가 있었으니 목욕탕 물에 불린 듯 땀에 탱탱 불은 그녀들의 발의 굳은 살은 손톱으로 살짝 당기면 오징어 실채 처럼 벗겨지곤 했다. 부상병들 처럼 절뚝절뚝 거리며 발을 씻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메고… 아침에는 화장품 냄새로 가득했던 여군 부대 내무반은 저녁에는 파스냄새와 멘소레담, 안티푸라민 로션 냄새로 가득했다. 이후 행사가 끝나고 나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발톱 하나 정도는 벗겨진 양말을 털면 톡 떨어져 나오곤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친구하자고 할만큼 그녀들의 발은 두 눈 뜨고 보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기자는 그 퍼레이드에 참가해보고 싶어서 여군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복무 기간 내내 단 한번도 참가해 본적은 없다. 당시 규정에 따르면 전방 전투 부대에 근무하는 여군들을 제외하고 국방부 및 각 군 사령부, 육군본부 근무 여군들만이 퍼레이드 참가 대상이었다. 당시 초임 여군 간부였던 기자가 “왜요?” 라고 물었을 때 함께 근무하는 전방 부대의 선배들은 “투박한 전투복 입고 철책에서 추위와 더위와 싸우며 고생하는 여군들은 빠지고 후방 부대에서 예쁘게 근무복 입고 근무하는 여군들이 이런 때 한번 빡쎄게 고생하는 거야.” 라며 고생은 다들 공평하게 해야한다(?)는 논리를 막내 여군인 기자에게 열심히 설명해줬다.

그런 이유로 당시 강원도 산골짜기 철책 사단에서 근무하는 기자는 훈련 제외였다.
그러나 서울 비행장에서 퍼레이드 훈련을 받는 동기들의 내무반을 어느날 방문했다가 위와 같은 장면들을 목격한 바, 전방 근무에 다시 한번 감사함(?)과 그녀들의 고생 총량은 나의 그것을 훨씬 뛰어 넘고도 남음을 느꼈다. 그리고 퍼레이드에 참가 했던 기자의 동기들은 20일 간의 꿈같고 꿀같은 위로 휴가를 떠났더랬다.
추억을 접고 다시 2023년으로 돌아온다. 10년 만에 ‘강한 국군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가 이번 75주년 국군의 날 캐치프레이즈로 진행 된 이번 시가 행진을 두고 의견들이 엇갈린다.

유트브 등 각종 미디어의 댓글들을 보면 해외 거주자들의 반응은 ‘감격스럽다’가 많아 보였다. 미국살이 하면서 국군의 날 행사 볼때 마다 해당 년도의 국군 통수권자가 누구냐를 떠나 내 조국이 자랑스럽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군사독재 정권을 떠오르게 한다’, ‘한반도 평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의 의견들도 상당했다.
실제 시가행진이 있던 날, 같은 맥락에서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는 참여연대가 주축을 이룬 시민단체들의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 대한 항의시위가 있었단다. 현 정부가 지향하는 ‘힘에 의한 평화’에 대해 진정한 평화란 힘으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라는 것이 항의시위의 골자다.

양 진영은 서로가 지향하는 평화에 대해 ‘가짜평화’라고 외친다. 보수진영에서는 ‘선의에 기대는 평화야 말로 가짜평화’ 라하고 진보진영에서는 ‘힘에 기대는 평화, 특히 강대국의 힘에 기대는 가짜 평화’라며 양쪽의 평화논리는 좁혀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기자는 양비론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평화란 힘만으로도, 선의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없다. 힘으로, 대화로, 계약으로, 신의로, 인간의 합리적이고도 보편적인 이성과 감성의 범주 안에 있는 것들의 총체적 조화로 평화는 이루어져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에 발을 딛고 서있느냐에 따라 평화를 지키는 수단은 달라진다고 본다. 군대가 꽃을 들고 대화하며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책임 질 수는 없지 않은가. 군이 힘으로 평화를 지킬 때 관과 민은 대화와 협력으로 평화의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솔직히 말해 양쪽 진영이 그 단순한 진리를 몰라서 서로의 평화는 가짜라고 해대는 것인가. 아니다. 상대의 결정적 한 가지가 못마땅하고 미우니 그 열가지 백가지가 다 나라를 말아 먹을 것들로 보이는 것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양쪽의 극에서는 서로를 악마화하며 끌어내리려 한다.

서울서 국군 퍼레이드가 열렸던 그즈음 뉴욕 에서는 정전 70년, 한반도 평화 대행진이 있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렸던 78차 유엔 총회 1위원회(군축 및 국제안보관련 의제를 다루는 위원회)에 3년동안 전세계적으로 모은 약 20만명이 넘는 ‘한반도 전쟁 반대 평화실현 서명’과 ‘글로벌 시민평화 운동 결과’를 유엔 사무총장과 한국전쟁 관련국에 전달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종교계에서도 참여했는데 특히 개신교 목회자들의 참여가 두드려졌고 천주교 활동가도 참여했다. 그런데 한국의 원로 사목 신부님 한 분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 행사를 응원함과 동시에 ‘뉴욕 뉴저지의 천주교 사제들이 이 평화 행사에 참여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럽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참여하지 ‘않’은건지 ‘못’한건지 사정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행사에 물리적 참여만이 한반도 평화에의 간절함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평화를 염원하고 실천하면 되는 것 아닐까. 미주의 후배 사제들이 한반도 평화 활동에 좀 더 적극적이었으면 하는 원로 사제의 간절함은 백번 천번 이해하나 평화를 지키는 활동의 다양성을 좀 더 이해해주었으면 하는건 기자의 개인적 바램이다.

한인 타운인 팰리세이즈팍에 위치한 기자의 본당인 성미카엘 성당은  주임신부님 지도 하에 지난 2017년 8월, 트럼프 전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사이에 핵을 두고 벌인 신경전으로 한반도 핵 위기가 고조 됐을 때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묵주기도 백만단 봉헌운동’을 펼쳤다. 영어권, 히스패닉, 한인 신자들 약 300여명이 매주 주일 미사 전후 및 평일에 모여 한반도 및 전 세계가 핵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 평화로 나아가게 되길 지향하며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마침내 2019년 7월 15일 묵주기도 백만단 달성을 기록했다.백만 단은 묵주기도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숫자다. 2018년 6월부터 2019년 6월 까지 총 세 차례 이루어진 북미 정상 회담으로 당시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건 평화를 향한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의 힘이었다고 기자는 확신한다.

이 칼럼을 쓰고 있는 동안 데스크 탑의 모니터에서는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로켓포 공격 동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전쟁은 소수의 노회한 정치인들이 일으키고 애꿎은 젊은이 들이 그리고 국민들이 죽어 나가는 참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달 마지막 주일에는 오버팩 파크에서 본당의 모든 민족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한반도 평화와 미국의 평화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걸으면서 묵주기도를 봉헌하는 평화의 발걸음,  절도는 전혀 없지만 진심은 담겨있을 ‘퍼레이드’가 예정돼 있다.
평화를 위한 활동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각자가 믿는 신에게 아침 저녁 기도 중 담벼락 안팎으로 평화가 절실한 곳과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평화에 대한 염원은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군인들의 퍼레이드는 평화의 염원이다. ‘우리들이 이렇게 절도있게 차리고 있기에 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나는 이번에도 엄청난 수고를 했을 후배들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10/9/2023 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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