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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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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제 3회

안 동일 지음

추사와 묵패

“대감마님”
달준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으나 그도 다른 삿갓의 박달나무에 배를 쎄게 찔리곤 쓰러졌다. 나무 뒤에서 이를 보던 초립동청년의 표정이 변했고 자신이 나서려는 듯 바랑을 고쳐 맸다.
그때였다. 징과 괭과리 소리가 아래쪽에서 들려오더니 이내 연희패들이 후다닥 들이 닥쳤다. 저들은 하나같이 산대놀음 탈을 쓰고 있었다.
“멈춰라, 백주에 무슨 짓들이냐.”
연희 이력이 만만치 않은 걸진 목소리였다. 복면 괴한들은 쓰러진 노인을 새끼줄로 묶으려 하고 있었다.
“가던 길 가거라, 다치지 말고.”한 복면 사내가 근엄하게 한마디 했지만 거기서 그칠 연희패 였다면 징을 쳐댈리 없었다.
“어라 이치들 보게 한번 놀아 볼꺼나…”
옆몸 굴리기를 하는 취발이의 테가 예사롭지 않다.
“애들아 놀아 보잔다.”

취발이가 동료들을 얼렀고 먹중과 말뚝이가 얼쑤 호응하고 나섰다. 먹중의 지팡이가 복면의 목검에 부딪혔다. 탈패들이 단숨에 복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숫적으로나 기량 면에서 탈 쪽이 월등했다. 징잡이는 계속 징만 쳐대고 있었다.
그런데 복면들이 저쪽으로 밀리자 작은 체구의 탈이 냉큼 다가가 쓰러진 노인의 기색을 살폈다. 가슴을 문지르고 손발을 주무르는 하얀 손속에 잔뜩 정이 배어 있었다.
엄엄했던 노인의 기식이 다소 돌아오는지 얼굴에 화색이 올랐고 숨이 차분해졌다.
그런데 복면 패 중 한 사람이 작은 탈의 뒤로 다가서고 있었다. 처음부터 망을 보는 소임이었는지 저쪽 나무 둥치 쪽에 있었던 작자였다. 복면이 노인을 돌보는 작은 탈 머리 위로 대나무 몽둥이를 내려치려는 순간 비호같이 달려 드는 장한 하나가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복면을 뒤에서 안아 냅다 뒤로 던져 버렸다. 아까부터 이쪽의 소동을 지켜보던 초립 청년 이었다.
“어이쿠, 누 누구야?”
복면이 나 뒹굴면서 비명을 질렀고 손에 여유가 생긴 탈패들이 우루루 다가와 몽둥이 찜질을 안겼다.
복면은 비명을 지르며 팔로 들어난 얼굴을 감싸며 일어나 동무들을 따라 줄행랑을 쳤다.
할미탈 작은 체구가 도움을 준 초립 청년에게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 했다. 어린 총각들이 쓰는 초립을 썼지만 부리부리한 눈에 수염이 덥수룩한 호남형 장년 사내였다.

“허 뉘신지 고맙수다.” 노장탈이 급히 다가가 탈을 벋지 않은 채 탈춤 대사조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고마와 할 것 없소, 나야말로 김 대감님을 찾아 온 손 이오.” 취발이가 달준의 어깨를 흔들자 달준이 눈을 떴고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정신이 드는가?”
“예, 정말 고맙습니다. 그런데 대감마님은?”달준이 대감을 먼저 챙겼고 대감을 흔들어 깨우려 하는 것을 할미탈이 손짓으로 말렸다.
“잠시 혼절하신 것이니 걱정 말고 일단 집으로 옮기세.”
말을 않는 할미탈을 대신해 노장이 말했다.“예. 그러지요”
달준은 주섬주섬 광주리며 행장을 챙겼다.

탈패가 익숙한 솜씨로 대막대 두개와 깃발 광목천을 이용해 들것을 만들었고 노인을 가뿐히 들어 뉘웠다. 탈을 쓴 장정 둘이 앞뒤로 들고 오던 길을 되짚어 뛰듯이 앞장섰다. 달준이 급히 그 옆에 붙었고 나머지 탈패와 초립동은 그 뒤를 따랐다.
인적이 뜸해지자 탈패들은 하나 둘씩 탈을 벗었다. 얼굴은 온통 땀 투성이들 이었다. 하지만 노장과 할미는 탈을 벗지 않았다.
“어디 사는 뉘인지 물어도 되겠소?”
노장이 옆에서 바삐 걷는 초립동에게 물었다.
“그쪽이 알리지 않는데 나만 알리란 법이 어디 있남유? 날 밤 포졸처럼.”
할미는 그 말에 푸훗 하고 웃었다.
“아녀자라는 것 다 알고 있는디 그만 벗지유. 그것도 이쁜 여자라는 것 알고 있슈.”
초립 털보가 그렇게 느물대며 말했다. 충청도 억양이 강했다.
그러자 아직 탈을 벗지 않은 말뚝이가 뒤쪽에서 앞으로 튀어나오며 나섰다.
“어허라 이 털보 놈 보게 어디다 대고 예쁜 아녀자 더러 벗으라느냐?”
그러자 초립이 그 운을 그대로 따라 하면서 대꾸했다.
“어허라 이 못생긴 놈 보게, 어디다 대고 어르신한테 이놈저놈 하느냐?”
“허허 보통이 아닌 놈 일세. 안되겠다. 트구 놀자.”
말뚝이가 춤추듯 탈을 벗고 한 바가지의 땀을 훔쳤다.
아무리 낮게 봐도 초립의 아버지뻘이 되는 초로의 얼굴이 나타났다.
초립 청년이 멋쩍은지 배시시 웃는다.
말뚝이도 웃었다.
“아까보니 힘이 장사던데, 무술을 좀 했소?”
“무술은 무슨 그냥 택견 좀 했습니다.”
“그래도 그리 나서기가 쉽지 않을텐데…”
“지두 서원 놈 들이라면 이를 갈고 있으니께유…”
충청도 말투가 다시 베어 나왔다.
“저들이 서원 패라는 것은 어찌 알았수?”
“저들이 나타날 때부터 봤기에 말하는 것 들었수다.”빠른 걸음을 옮기며 던진 말이다.
노장탈이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서 무언가 서로 작은 얘기를 주고받더니 함께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누는 대화소리는 할미탈이며 다른 동패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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