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 강경파, 예산안 처리 불만
새 의장 선출 전까지 의회 마비
234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권력승계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임기 도중 해임됐다. 연방정부 셧다운을 피하기 위해 임시예산안 처리에 합의해준 것을 문제 삼은 공화당 강경파들이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을 주도했고, 이 결의안이 3일 하원을 통과한 것이다. 소수의 극단적 성향을 가진 의원들에게 휘둘려온 미 의회 민주주의가 ‘올스톱’ 될 위기에 처했다.
이날 열린 하원 전체회의에서 진행한 표결 결과 케빈 매카시 의장(사진)에 대한 해임안은 찬성 216표, 반대 210표로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 212명 중 표결에 참석한 208명 전원이 찬성했고, 공화당에서도 해임안을 발의한 맷 게이츠 의원(플로리다주)을 비롯한 강경파 8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표결은 전날 밤 게이츠 의원이 임시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매카시 의장이 민주당과 ‘결탁’했다고 주장하며 해임결의안을 제출한 지 하루 만에 즉시 진행됐다. 해임에 찬성하는 공화당 강경파가 공화당 전체 의원의 4%(8명)에 불과할 만큼 극소수인 데다 민주당 의원 일부의 기권표 가능성을 고려하면 부결될 것이라는 게 당초 관측이었다.
하지만 이날 오전 민주당이 비공개 의원총회를 통해 해임안 찬성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무게추가 이동했다. 매카시 의장을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이 민주당 내에서 팽배했다고 한다. 매카시 의장이 예산을 전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임시예산안 수용으로 셧다운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그간 행보를 고려하면 민주당이 나서서 ‘구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근 강경파의 요구대로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착수를 지시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공화당 하원의 내전을 끝낼 책임은 공화당 의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3위인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이 통과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하원의장 해임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진 것도 110여년 전인 1910년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조지프 케넌 의장에 대한 해임안은 부결됐다.
CNN은 “매카시 의장의 몰락에는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매카시는 온건파가 아니었고, 공화당이 민주주의에서 멀어지는 것을 견제하는 데 거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면서 “그렇지만 그는 극단주의의 길에서 벗어나 나라를 (셧다운의)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바이든과 합의를 모색하던 순간 해임됐다”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매카시의 가장 큰 실수는 통치(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로써 매카시 의장은 올해 1월 하원의장에 선출된 지 269일 만에 전격 해임되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이는 1876년 이후 하원의장의 최단기 재임 기록이다. 매카시 의장은 선출 당시에도 당내 강경파의 반대로 인해 15차례에 걸친 재투표 끝에 가까스로 하원의장에 오른 바 있다. 매카시 의장은 해임안 가결 후 기자회견에서 차기 의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과) 협상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화당은 1주일 뒤인 오는 10일 의원 총회를 열고 차기 의장 선거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의장 선출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하원의장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강경파가 새 의장 선거에서도 실력 행사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 하원의장이 조기에 선출되더라도 강경파가 언제라도 의장 해임안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한 공화당 내홍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차기 의장은 공화당 주류가 우선시하는 국경보안 등의 이슈와 강경파가 밀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탄핵 추진, 연방지출 대폭 삭감 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처지라고 전망했다.
백악관은 커린 잔피에어 대변인 명의 성명에서 “미국이 직면한 시급한 도전 과제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하원이 조속히 의장을 선출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