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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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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62회

안동일 작

백제와의 한산성 전투

그러면서 상소의 뜻을 담은 국서랄 것도 없는 험담과 하소연은 이어졌다.
‘신과 고구려는 원레 부여에서 나와 지난 시대에는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지금 고구려의 폭 거의 할애비 교(較 고국원왕)가 가볍게 우호를 어기고 몸소 무리를 몰고 와서 신의 경계를 짓 밟았습니다. 신의 할아비 수(須 근구수왕)가 군사를 정비하여 번개처럼 기회를 타서 공격 하였습니다. 서로 싸움을 벌이고 교의 머리를 베어 효시하였습니다. 이일이 있은 후 그들은 감히 남쪽을 엿보지 못하였습니다.’
또 고구려에서 풍홍을 죽인 죄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말하고 원병을 보내 준다면 공주를 보내 후궁으로 삼게 하고 자제를 보내 일꾼으로 삼게 하였다고 했다. 특히 장수왕은 무단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대신과 귀족을 마구 죽이고 백성을 괴롭혔다고 했는데 ‘귀족은 어육이 되었고 백성은 강시가 되어 도처에 통곡만이 메아리 친다’고 험담을 하고 있었다.

‘황제께서 위엄으로 군사를 동원한다면 정벌은 있으나 전쟁은 없을 것입니다. 신이 비록 불민하나 힘을 다해 거느린 군사로 향응하겠나이다. 불의와 거짓을 일삼는 고구려는 남쪽으로 유씨(송나라를 말함)와 길을 트고 북쪽으로는 오랑캐(북연을 말함) 들과 맹약을 하여 서로 입술과 이빨처럼 지내면서 황제의 지략을 능욕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이런저런 무고와 험담이 계속 되고 있었다.
심지어 북쪽 바다에서 떠다니던 시체에서 주운 것이라며 옷과 안장이 고구려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아 북위의 사신을 죽인 것이 틀림없다며 그 물건을 함께 보낸다고도 적혀 있었다.
“이런, 이런 망극한 언사가 있단 말이오.”
“이거야 낯 뜨거워서 볼 수가 있나.”
저마다 혀를 찼다.
“이 글을 읽으신 마마의 심정은 어떠셨겠소?”
“이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징치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당장 군사를 내기엔 시기도 그렇고…”
그러면서 죄중은 대창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런 류의 전투라면 창하의 여진군단이 나서는게 십상일반 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진의 여진군은 지난해에도 그랬고 올해도 지두우와의 전투 신라와의 전투에 연이어 나가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개선한바 있어 그 기세와 평판이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군사를 내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얼마 전 실직주에서 신라와 실랑이를 또 벌여야 했는데 군사들은 그 피로도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아진, 대창하는 자신이 분연히 나서 우리 숙신군에게 맡겨 달란 한 소리를 좌중이 바라고 있다는 것을 눈치는 챘지만 그냥 묵묵히 있었다.
조당이 분분한 의론으로 왁자지껄 했다.
“자, 자, 좌정들 합시다. 대왕의 흠덕을 이렇게 망극하게 손상 했으니 신하된 도리로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고 어떤 수순을 밟아 개루를 징치해야 하는지 의논들 해 봅시다.”
국상인 고추가 가랍보가 좌중을 안정시키면서 말했다.
30명이 넘는 중신 급 문무양측의 인사들이 조당에 모여 있었다.
“도미의 일에도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했었는데 그때도 논의만 하다 말았는데 일이 이쯤에 이르렀으니 이번엔 허언을 하지 않도록 합시다.”
가랍보가 헛기침을 한번 한 뒤 좌중을 둘러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도미와 아랑의 일은 이랬다.
이태 전 눈먼 장님 한명이 남루하기는 했지만 아리따운 여인에 이끌려 백제와의 국경지대를 넘어 고구려로 온 일이 있었다. 둘은 부부 였는데 장님인 남편의 이름이 도미였고 여인의 이름이 아랑이었다. 처음엔 많은 유민중에 하나려니 하고 무심히들 넘어갔는데 저들의 사연이 알려 지면서 유명인사가 되었고 조정에 까지 저들의 사연과 처리 문제가 논의로 올려지기도 했었다.
도미는 백제 사람이었다. 비록 벽촌 소민(編戶小民)이지만 자못 의리를 알며 그 아내 아랑는 아름답고도 절행(節行)이 있어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蓋婁王)은 이 소문을 듣고 도미를 불러
“무릇 네 부인의 덕은 정결(貞潔)이 제일이라 하지만, 만일 어둡고 은밀한 곳에서 좋은 말로 교묘히 꾀면 넘어가지 않을 여인이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미가 대답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소신의 아내는 죽더라도 마음을 고쳐먹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왕은 도미의 부인을 시험해 보기로 하겠다며 도미를 궁궐 안에 머물러 있게 하고 신하에게 왕의 옷을 입힌 뒤 말과 몸종을 딸려 밤에 도미의 집에 가게 했다.
그에 앞서 왕은 사람을 보내 도미의 아내에게 왕이 온다고 기별했다.
가짜 왕은 도미의 집에 도착하여 도미 부인에게 “내가 오래 전부터 너의 아름다움을 듣고 네 남편과 내기 장기를 두어 내가 이겼다. 내일은 너를 왕궁으로 데려가 궁인으로 삼을 것이니 이제 너의 몸은 나의 소유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짜 왕은 도미의 부인에게 가까이 다가서려 했다.

그러자 부인이 말하기를 “국왕께오서 망령된 말씀을 하실 리가 없사온데 어찌 제가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청하옵건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으로 들어가소서. 곧 옷을 갈아입고 들어가 모시겠나이다”라고 말한 뒤 물러나와 미모의 몸종을 곱게 단장시켜 대신 들어가 수청을 들게 했다.
후에 왕이 속은 사실을 알고 격노하여 남편 도미에게 속인 죄를 물어 두 눈을 뽑은 뒤 조각배에 실어 강물에 띄워버렸다. 그리고 그 부인을 다시 강제로 범하려 하자 부인은 “지금 저는 남편을 잃은 몸이 되었습니다. 이제 저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대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거역하겠습니까. 하오나 지금은 월경으로 몸이 더럽사오니 다른 날에 목욕 재계하고 오겠나이다”라고 말해 왕이 믿고 허락하였다.
부인은 그 길로 도망쳐 남편이 버려진 강가에 이르러 땅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때 홀연히 조각배 한 척이 떠내려왔다. 부인은 그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거기서 도미 부부는 풀뿌리로 연명하며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蒜山) 으로 넘어 왔다.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겨 옷과 먹을 것을 주어 구차스럽게 지냈는데 그들의 사정이 알려 지면서 고구려 내에서도 유명하게 되었고 관원들이 그들을 데려다 조사를 하기도 하였는데 전후의 사정이 개루왕의 폭정 때문에 넘어온 유민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낸 바 있는 사건이 도미의 사건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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