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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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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연재 58회

안동일 작

왕의 사돈이 되다.

어전 회의가 열렸고 격론과 갑론을박이 오간 끝에 돈독한 관계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견해가 우세 하여 종친의 규수를 공주로 삼아 위니라 황실에 보내기로 결정이 됐고 파발이 궁밖으로 나가 종친인 고추가 고진하 대가를 궁으로 들게 했다.
고 진하 대가는 장수왕 거련의 아우로 문무에 출중한 인물이었고 연나부의 기골 있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 2남 2녀를 두고 모범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왕족이었다.
얘기가 잘 된 모양인지 대가의 막내딸인 정란이 위나라로 시집가게 됐다는 소문이 조정으로부터 시작돼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며칠 뒤 왕은 질녀인 정란을 궁으로 불렀다.
마침 대창하도 어전에 있던 날이었다.

“안 본 사이 많이 컸구나. 활짝 핀 모란꽃 같구나.”
사뿐히 절하는 정란을 보면서 왕이 말했다.
“마마 께서는 풍채가 더 좋아 지십니다. 누가 마마를 칠순이 넘으셨다고 하겠습니까?”
사실 그랬다 그 무렵 장수왕은 칠순을 넘겨 일흔세살의 나이였음에도 50대 초반으로 보일 만큼 기골이 장대 했고 검붉은 얼굴에는 광채까지 났던 것이다.
왕은 수염조차 세지 않았다.  그저 흰 수염이 군데 군데 몇가닥 있을 뿐이었다.

“내 너를 부른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을 부탁 하려고 그러는 구나. 얘기는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왕은 정란을 쳐다보지 못하고 허공을 보면서 운을 뗐다.
“아비에게 들었습니다. 소녀도 꼭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

“그래 무슨 얘기인고?”
“저를 위나라 왕실로 보내겠다는데 거기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알고 있구나. 그래 해봐라.”

“저는 가기 싫습니다. 마마 ”

“그래 어려운 일인 줄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싫다고 없던 일로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일은 아닌데…”

“그렇다는 것은 짐작 합니다. 하지만 시집을 가는 건 접니다. 전 고구려를 떠나기 싫습니다.마마가 계시고 가족이 있는 평양성을 곁을 떠나기 싫습니다.”
정란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 굴 기세였다.

왕은 말없이 그런 그녀를 쳐다보기만 하더니 한참만에 입을 열었다.
“어린 조카에게 이런 어려운 짐을 지운 내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왕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정란이 계속 채는대는 말을 이었다.
“위나라는 지난번에 연나라의 공주를 후궁으로 맞이하고도 그 나라를 없앴습니다. 그런 신의 없는 위나라에 시집을 가는 것은 죽어도 싫습니다. 더구나 위왕은 마마 보다도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라고 들었습니다. 끔찍한 일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주십시오.”
왕은 계속 생각에 잠겨 있는 듯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허공과 조카딸을 쳐다보던 왕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네 뜻은 알았다. 내 더 생각해 보도록 하마. 물러가 있도록 하여라.”
“감사합니다. 마마. 그러면 집으로 가 아비에게 마마의 허락을 받았다고 이르겠습니다.”
“허허 녀석 급하기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이 아니었다. 정란이 나간 뒤 왕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옆에 있던 내관장을 쳐다보며 한마디 했다.
“어쩔 수 없겠지 저렇게 싫어하는데 …”
“마마 일이 그리 간단한 게 아닌 듯 생각 되옵니다.”
“그래도 본인이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쩐단 말이냐? 아무래도 이일은 없던 것으로 해야 겠구나.”
“마마 하지만 중신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봐야 할 것이옵니다.”
“중신들이 시집가는 것은 아닐 터인데…”
왕은 혼자 말처럼 한마디 덧 붙였지만 그 말에 무게는 그리 실려 있지 못했다.

중신회의가 소집되었고 또다시 의견이 분분했다.
뭐 꿀릴게 있는냐 강하게 거절하는 쪽으로 나가자는 축도 만만치 않았지만 나라간의 약속이니 만큼, 더욱이 어찌 됐건 중원의 패자인 위와의 일이기 때문에 되돌리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당사자라 할 수 있는 고추가 진하공이 강경하게 나섰다. 자신이 딸을 설득할 터이니 나라의 일을 더 이상 혼동스럽게 하지 말자고 했던 것이다.
“송구스럽기 그지없소. 내 딸을 잘못 키운 모양이오. 이 땅에 살면서 어찌 개인의 호불호만을 따져 일을 처리할 수 있단 말이오. 이 땅의 풀 한포기 나는 새 한 마리 조차도 땅을 매개로 대왕 마마의 은덕으로 살고 있는 터인데, 내가 더 말이 않나오도록 확실하게 다져 놓도록 하겠소. 마마께서도 더 이상 심려하지 마십시오.”
왕은 미심쩍어 하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어전회의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끝났고 며칠 뒤 중국에서 사신이 한번 더 왔다. 이번에는 정란의 초상을 그려 가야겠다고 했다. 화공이 고진하 대부의 집으로 들어갔고 어떻게 잘 구슬렸는지 아니면 아비의 강압적인 분부를 거슬릴 수 없었기에 그랬는지 정란은 곱게 차려입고 화공 앞에 장시간을 앉아 줬다고 소문이 돌았다.
왕실과 중신들은 혼사문제는 그렇게 넘어 가는가하고 일을 대부의 장원에 일임하다 시피 하면서 한시름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예 일이 터치고 말았다.
정란을 데리러 올 위 왕실의 가마가 평양성에 도착 하는 것이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는 무렵 난데없이 정란이 죽었다는 것이다.
사냥을 나갔다가 단애에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딱한 노릇 이었다. 성안이 온통 그 문제로 술렁였다. 나라 일을 맡은 대가 대신들이야 사건의 자초지종을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였고 또 중국에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인가를 고심해야 했지만 일반 백성들은 백성들대로 들리는 소문들을 조합해서 확대 재생산하기에 바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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