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의 격렬한 논쟁 속에 박스오피스 최 상위권
미국의 한 ‘비주류’ 액션 영화를 놓고 보수와 진보 진영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주연 배우와 제작자 등이 ‘친(親)트럼프’ 또는 ‘극우 성향’이라는 이유로 진보 성향의 할리우드 영화계와 주류 언론들이 일제히 외면했음에도 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자, 정치권의 이목도 집중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각) “좌파 언론들이 멀쩡한 영화에 이념을 투영시켜 작품을 망치고 있다”며 자체적으로 영화 상영회도 개최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이 영화가 정쟁(政爭)의 중심에 선 모양새다.
‘뜨거운 감자’가 된 이 작품의 제목은 ‘사운드 오브 프리덤(Sound of Freedom)’이다. 국토안보부 아동 범죄 전담반에서 일하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아동 구조 전담 기관을 세운 뒤, 남미 콜롬비아 정글에서 구조 활동을 펼쳐온 팀 밸러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미 독립기념일인 지난 4일 개봉한 직후 미국 흥행 1위를 차지해 현재까지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미 흥행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이 영화는 약 4950만달러(약 627억원·지난 11일 기준)로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냈다. 디즈니, 픽사 같은 할리우드 거대 기업들이 내놓은 ‘인디애나 존스’ ‘엘리멘털’ 등 블록버스터 영화를 모두 제친 것이다. 보수 성향의 폭스뉴스는 “어떤 주류 영화 스튜디오도 이 영화를 제작·배급하겠다고 나서지 않았고, 언론들도 보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라고 보도했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미 주류 영화계의 관심 밖이었다. 롤링스톤 등 유명 대중매체들도 영화 예고 보도를 하지 않았다. 영화가 실제 인물로 조명한 전직 요원 팀 밸러드가 과거 극우 음모론인 ‘큐어논(QAnon)’을 연상시키는 발언을 했다는 게 이유다. 큐어논은 극우 사이트에서 음모론을 주창하는 익명(Anonymous)의 네티즌 ‘Q’에서 따온 말로, 비밀 조직이 미국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국가 전복을 노리고 있다는 음모론을 추종하는 세력을 뜻한다. 밸러드는 지난 2020년 트위터에 온라인 가구 소매업체인 ‘웨이페어’가 가구 수납장에 어린이들을 넣어 매매하고 있다고 했는데, 큐어논 지지자들도 민주당 지도부가 아동 인신매매를 알선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밸러드가 트럼프의 ‘국경 장벽 건설’ 등 이민 정책을 옹호했고, 주연 배우 짐 커비즐과 제작자 에두아르도 베라스테기 또한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인 점도 진보 주류 영화계가 이 작품을 외면한 이유라고 뉴욕포스트는 전했다.
그러나 내용만 따지자면 이 영화는 군더더기 없는 ‘웰메이드(well-made) 액션극’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글로벌 영화 비평 사이트 IMDb가 이 영화에 8.5점(10점 만점)을 줬고,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호평 일색이다.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등 친민주당 성향의 언론들도 “영화 자체는 음모론이 아닌 현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악당들도 일반 범죄자들”이라며 영화 내용 자체에 대해선 크게 비판하지 않고 있다. 다만 극우 지지자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고 있고, 배우나 제작자 등이 음모론과 연관돼 있는 만큼 해당 영화가 대중들을 오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우파 진영에선 “좌파 언론들이 무리하게 ‘위험한 영화’란 낙인을 찍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2018년 촬영이 끝난 이 영화를 20세기 폭스가 배급하기로 했지만, 2019년 디즈니가 폭스사를 인수하면서 영화 상영이 무기한 중단됐던 점을 들어 “좌파 성향의 디즈니가 고의로 영화를 묻어버리려고 한 것”이란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는 19일 뉴저지주(州) 베드민스터에 있는 자신의 골프 클럽에서 이 영화 상영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상영회엔 배우 커비즐, 제작자 베라스테기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트럼프는 성명에서 “뉴욕타임스와 할리우드리포터 등 ‘리버럴(민주당 성향의)’ 매체들이 이 영화에 대한 리뷰 자체를 거부했다”며 “좌파 언론들이 이 영화를 쓰레기로 만들고, 상영 티켓을 구매한 수백만 영화 관람객을 조롱한 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