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5 F
New York
September 20, 2024
hinykorea
연재소설

<장편 연재소설> ‘구루의 물길’ – 연재 40회

안동일 작

– 어려운 결단, 파병

아진도 다른 중급 장군들과 함께 회의장을 나서려는데 맹광장군이 그를 불렀다.  맹광과는 지난번 관산성 출병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다.

“아진 장군 나좀 보시게.”

“예 그러지요.”

맹광은 아진을 저만큼의 구석 쪽으로 데리고 가더니 입을 열었다.
“자네가 이번 출병의 선봉을 맡아 줘야 겠네.”
아진은 놀랐다.
“네 어떻게 제가 그런 중책을…”
“자네라면 충분히 그 일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 싶네, 또 마마의 생각도 그렇고…”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한번 해 보겠습니다.”왕의 뜻이라면 한번 해볼만 하다 싶은 투지가 솟았다.
“숙신군단 조련은 잘 돼가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번 출병에서도 기개를 떨쳐 보이게.”
그랬다. 큰 전투는 아니었지만 신라와 백제가 번갈아 가며 시끄럽게 했었던 관산성 출병에서도 아진과 숙신 군대가 선봉을 맡아 공훈을 세운바 있었다. 그 전투 이후 아예 물길인들을 중심으로 한 숙신군이 8천의 규모로 꾸려져 아진이 지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열심히들 하고 있습니다.”
“그래 기대가 크네, 나머지 병력은 내군과 우리 평양 방위군에서 떼어내 편제를 갖추도록 해줌세.”
대단한 일이었다. 일종의 방패막이로 숙신군을 이용하려는 뜻이 있는가 싶었지만 그 예상을 깨는 또 다른 파격 이었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왕의 직속 군대와 신예 정예병으로 떠오른 평양 군단의 지휘를 아진에게 맡기겠다는 것 아닌가.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가보게, 군사들 배불리 먹이고 사기를 높여 주는 것 잊지 말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

아진은 주먹을 마주치는 고구려식 포권을 올렸다.
병부에서 나온 아진은 말에 올라 자신 군단의 막사이자 가산이 있는 동평양 숙신향 동촌으로 향했다. 말을 달리는 아진의 머리 속에는 선봉군의 편제와 각부장들의 얼굴이 그려지고 있었다. 숙신군 8천이라 했지만 절반 쯤인 4천은 둔병이었다. 둔병은 평소에는 가정을 꾸리고 살면서 농사나 풀무간, 채석장등 일터에서 일을 하지만 소집이 되면 군으로 복귀 해야 하는 절반의 병사들이었다.
둔병이 소집되면 막 추수를 하고 있는 농장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부녀자와 노인들이 애를 써야 할 판이다. 아진은 오늘 내일 중에 병정을 모두 수확에 동원 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평양으로 도읍을 옮긴 이래 너른 평야가 있었기에 숙신인 들에게도 농토가 배정됐다. 농사에 서툴러 첫해 수확은 형편 없었지만 평양 토박이들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석삼년을 만풍년으로 만들어 낸 것이 숙신 가산이었다. 동촌의 쌀은 그 품질이 좋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국내성에 있을 때는 최고의 별식으로 쳤던 쌀밥을 이제 평민들 까지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게 된것도 천도의 덕분이었다.

거련왕 24년 가을, 서기 436년 추수가 막 끝난 무렵, 왕은 즉위 이후 가장 큰 군대를 요동으로 출병 시켰다.
성대한 출병식이 도성 광장에서 백관들과 도성민들이 참여 한 가운데 펼쳐졌다. 총사와 각군의 장군들에게는 왕으로부터 지휘봉이 하사 됐는데 붉은 깃털의 금색 장식의 투구를 입은 아진은 선봉군 전군의 장군으로서 내노라 하는 고구려의 장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보무도 당당히 어전으로 나가 왕으로부터 붉은 대추나무로 만든 지휘봉을 하사 받았다.
왕은 이렇게 자신의 뜻을 하달했다.
“이번 출병은 우리 고구려가 요동의 주인임을 확인 시키는 중요한 출진이라는 것을 제장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천하는 중국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또 그 사람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바라오. 그 사람들이 우리를 존중하고 친선을 도모 하자면 그렇게 할 것이고 그들이 우리를 업수히 여기고 전횡하려 한다면 분연히 맞서 우리의 기개와 용맹을 떨쳐 주기 바라오.”
제장들은 허리를 숙이면서 우렁차게 대답했다.
“명심 하겠습니다.”
화려한 예복으로 차려입은 궁정악대의 진군 음악 연주가 울려 퍼졌고 북소리 고동 소리에 맞춰 군대는 왕에 대한 사열을 시작했다.
아진의 선봉대가 가장 먼저 왕의 앞을 지났다.
왕도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고구려의 웅대함이 고구려의 강성함이 패수벌에 메아리 쳤다.

아진은 흑갈색 애마 베일레에 올라 북연평정 대군의 선두에 서서 먼 행로에 올랐다.
물길가산 식구들도 모두 연도에 나와 글르 환송 했다.
아진의 아버지 아타이가 가장 걱정 스러워 하면서도 가장 자랑 스러워 하는 표정이었다.
고구려 귀족 복색의 아타이는 아홉 살난 손자 경운과 일곱살 난 막내 경우의 손을 잡고 있었다.

북연의 도읍 화룡성은 대릉하 건너에 있었다. 용성이라고도 불렀다.
당시 북연은 고구려와는 요하와 대릉하를 경계로 하고 있었다.
평양에서 요하 까지는 패수 살수를 건너 의주와 봉황성 그리고 안시성을 거쳐 가는 먼 여정 이었다.
평양에서 출발한 아진의 선봉대가 서둘러 요동을 관통해 대릉하에 도달했을 때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초겨울에 돌입해 있었다.
요동의 겨울은 그만큼 빨리 찾아왔다.
그렇게 보면 위나라로서는 시기를 잘못 택한 셈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위는 위 대로 자신들이야 말로 요동보다 더 추운 지방 출신으로 동장군을 이겨 낼 수 있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위를 세운 선비족은 요동 위쪽 몽골 사르무후 지역이 근거지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때 연을 공격한 위군은 벌써 중원에 동화 돼 있었고 병사의 대부분이 중원 출신이었다. (계속)

Related posts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36회

안동일 기자

<장편소설> ‘조선여인 금원’ 연재 61회

안동일 기자

장편 이민 현장소설> ‘영웅의 약속’ 연재 101회

안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