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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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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31회

 

안동일 작

격구와 사신단

 

아진이 객사에 돌아와 쉬려는데 문밖에서 기척이 있었다.
“니르 장군 계시오?”
위충량 이었다. 위충량은 위나라 장수 였다. 지난번 사신 일행으로 왔을 때 교분을 맺은 사이 였는데 격구를 좋아 해서 이루어진 교분이었다. 오늘 경기만 해도 그가 사신 일행 중 격구의 달인이 있다고 효문제 에게 얘기해서 급작스레 이루어진 터였다.
“오늘 황제 앞에서 우리 체면을 세워 줘서 너무도 고맙소.”
“체면을 세워드리다니요?”
“왜 그러시오 선수끼리, 니르 장군이 양보를 했으니까 우리가 이길 수 있었지 고삐를 제대로 죄었으면 가당치나 했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장군의 수양타를 어찌 소장의 재주와 견준단 말이오”
위충량은 아진을 계속 여진 이름인 니르 라 불렀다. 나름대로는 뜻이 있는 모양이다 싶기는 했다.
그때 한 여인이 차 쟁반을 들고 왔다. 시비의 차림은 아니었다.
그리고 낯이 설었다. 객사에 소속된 여인이 아닌 듯 싶었다.
“마침 남쪽에서 올라온 우롱이 있기에 끓여 내라 했소. 차 이름이 영웅이오”
위충량은 아진을 한번 쳐다본 뒤 여인에게 물었다.
“제대로 끓여 냈겠지?” “정성을 다했습니다.”
대답하는 여인의 콧날이 오똑했다. 그리고 옆에서 보이는 귓불이 잘 생겼다.
“인사 올리거라, 숙신 최고의 명장 니르 장군이시다.”
여인이 아진을 보고 말없이 목례를 올렸다. 잠깐 치켜 올려다 보는 큰 눈이 고왔다.
“호영 이라고 숙신 출신입니다. 소장과 함께 관내부 일을 보고 있는 여인이올시다.”
충량이 한마디 보탰다.
“그래요?”반가움 보다는 경계심이 먼저 일었다.
굳이 위충량이 자신을 여진 이름으로 부르는 것도 그렇고 여진 여인을 자신에게 데리고 온것도 그랬다. 그렇다고 먼저 무슨 뜻이냐고 따지고 묻기에는 섣불렀다.

호영이라 불리운 여인이 차를 따르고 마시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차의 향은 입안을 적시고 가슴까지 내려 앉았다. 소양이 없는 아진이 느끼기에도 가히 명차중의 명차였다.
차에 대해 한마디 찬사를 던지려는데 위충량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영웅과 함께 영웅의 차를 마시니 말학인 나도 영웅이 된 느낌이오 장군.”
“소장 더러 영웅이라니 당치 않은 말씀이오.”
“니르 장군이 영웅이 아니라면 누가 영웅이란 말이오. 그렇지 않은가 호영?”
“그렇습니다. 오늘 격구 하시는 모습을 뵈오니까 진실로 영웅 중의 영웅을 뵈온 심정이었습니다.”
호영도 한마디 보탰다.
“두 사람이 면전에서 너무 과찬을 하시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장군 혹시 사르문강 유역의 흑수 소식 들으시었소?”아니나 다를까 위충량이 그 얘기를 꺼내왔다.
아진도 평양에 있을 때 부터 풍문을 들었고 평성에 오는 길에 확인한 이야기 였다.
사르문강 유역의 숙신 지역에 카타문 이라는 여진 족장이 맹렬한 기세로 주변을 복속 하여 강성한 아이만을 형성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북위의 강력한 지원이 있다는 소문도 함께 였다.
“풍설로만 들었습니다.”

“내 일전에 카타문 장군을 만난 일이 있었소, 대단한 영걸 이었소 화극을 쓰는 솜씨가 아주 뛰어 났었지.”
“함께 용력을 겨루기라도 했던 모양입니다.”
“어떻게 아셨소. 처음엔 서로 창을 겨누어야 했지만 나중엔 같은 편이 되었지요. 지난해 전 연을 치는 작전에 우리 위와 함께 힘을 보탰었지요. 여기 호영도 그때 만났었지요. 호영이 바로 카타문 장군의 질녀요.”
“그러면 호영낭자도 올기 였단 말이오?”“그렇습니다. 올기로 와서 아하 시절을 보냈었죠.”

아진은 고개를 끄덕 였다. 주마등처럼 자신의 지난 지나 세월이 스쳐 갔다.
올기는 포로라는 여진 말이었고 아하는 노비였다.
위의 도읍 평성에는 각 종족들의 즐비하게 모여 있었다. 한족 몽골족 저족 등 은 물론 서역의 색목인들 까지도 들어와 둔병 부대를 형성 하고 있었다. 효문제는 종족 연합 정책을 쓰고 있었지마 자신들 선비족은 강력하게 한족화 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한족과 선비족을 머리에 놓고 나머지 종족 들을 수족으로 쓰는 이원적 융화 정책 이었다.
위서 태조기에 의하면 398년 북위의 수도인 하북성 남부 업에는 고구려인등 시술자 예술가 10만 여명이 가득차 있다는 기록이있다. 광개토 대왕의 정복 사업의 일환 이었는지 아니면 북위가 끌고 간 것인지 명확히 밝혀 지지는 않고 있지만 북위에 고구려 출신들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자료 이다.
몇 년 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북위와 고구려의 관계를 잘 드러내는 인물이 등장 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고초이다. 그는 북위 고조의 여동생인 고평공주와 혼인하여 상서공이라는 지위에 오르고 여동생을 고조의 황후로 삼게 했다. 이 여동생은 문소태후가 되어 세종(499-515)를 낳았다. 여기애다 그의 조카 딸은 세종의 비인 선무황후 가 되기도 하는 등 황실과 3중의 혼인관계를 맺고 족당을 형성 권력을 휘둘렀다고 기록돼 있다. 이런 권세를 누린 그의 집안이 발해 고씨로 알려져 있다.
그의 5대조 고고는 4세기초 서진이 명말할 무렵 난리를 피해 고구려로 갔는데 그의 가문은 그때부터 고구려에 살았고 고조와 문소태후도 고향은 고구려 였다. 그가 470년대에 고구려에서 북위로 돌아오자 곧 여위 장군에 봉해 지고 여동생을 황후로 들여 보내는 놀라운 출세를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분명코 고구려인이 되어 있던 그를 포용함으로서 고구려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생각이 위 황실에 있었던 것으로 파악 되고 있다.
그런데 고초의 동생인 고현은 위에서 고구려 대중정이란 고구려 인물 들을 천거 하는 벼슬을 받았다. 이는 당시에 북위에 고구려에서 온 인물들이 대단히 많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며 또 그무렵에는 각 나라가 출신을 그리 심각하게 따지지 않고 인재 모으기에 나섰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할 것이다.

“니르 장군은 사라문의 소식을 들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소? 피가 용솟음치지 않았소?”
“피가 용솟음 치다니요?”

“같은 종족이 그렇게 발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참여해서 웅지를 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소?”“위 장군이 무엇을 웅지라 하는지 잘 모르겠소만 고구려 왕께서 명령 하신다면 선린관계를 유지 할 수 있도록 힘을 쓸 수도 있겠구나 싶기는 했던 것은 사실이오. 아직은 그곳 상황을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아진의 이 대답은 위충량에게는 실망 스러운 대답일게 뻔 했다.
“장군은 종족을 어떻게 생각 하시오”“글쎄요…”
아진은 즉답을 회피 했다.
“종족이야 말로 피를 나눈 형제 아니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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