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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장편 역사소설> ‘구루의 물길’ – 제27회

안동일 작

  • -축제의 수렵경연

“뭔데? 얘기해봐”
무미가 평소의 어투로 돌아와 대꾸했다.
“무미님은 왜 나한테 이토록 잘 대해주시나요?”
“왜, 잘 대해주는게 싫어?”
“아니…그게 아니라… ”
“아진님이 좋으니까 그러지.”
“저는 무미님 보다 나이도 어리고 처지도 많이 다른걸요.”
“그런데 아진님 기억나? 처음에 우리 궁에 오던 날 북문 쪽에서 있었던 일 말야.”
“북문쪽에서요?”
“그때 아진님이 경당의 무뢰배 녀석들을 혼내 줬잖아”
“아, 그때요? 그때 무미님이 거기 있었어요?”
“그래, 그때부터 난 아진님을 유심히 봤어.”
아진도 이제야 생각이 났다.
“아, 그때 같이 있었던 궁녀가 무미님 이였군요. 전 정신이 없어서…”
“정신이 없긴, 녀석들을 꼼짝 못하게 하던데 뭘.”
당시 경당의 조의선인 쯤 되어보이는 청년들 셋이서 여성들을 희롱하고 있었다.
그 젊은 여성 가운데에는 아주 독특한 외모의 색목인으로 보이는 처녀도 있었다.
그 때문에 일어난 사단 인듯 싶었다. 호태왕의 정벌이후 국내성 장안에는 파란 눈의 큰 코의 색목인 여인들도 가끔 눈에 띄었는데 아무래도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
그날도 청년들은 색목인 처녀의 외모와 어투를 흉내 내면서 자신들과 같이 앉아 놀자고 그러는 것이었고 여인들이 한사코 싫다고 하는데도 길을 막고 희롱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아진은 왕의 명을 받고 석도강에서 궁으로 들어가던 참이었다.
떠들래한 광경에 사람들도 재밌어라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안쓰러워 아진이 나섰다.
“젊은 선인학사님들이 이 무슨 짓입니까?”
아진이 색목인 처녀의 어깨를 부여잡으려는 청년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그때부터 그들과의 한판이 시작되었다.
주먹이 오가거나 폭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종족의 다름에 큰 신경을 쓰고있던 아진으로서는 거련 태자에게 들은 대로 얼굴색이 다르다고 차별을 하고 업수이 여겨서 되겟냐고 예의 사해동포론을 한바탕 쏟아냈고 상대방 청년들도 그렇게 질이 나쁜 축들은 아니었던지 논리정연한 아진의 질타에 선선히 잘못했다며 사과를 했었던 그 일이었다.
“아진님, 기억나? ‘고구려에 살면 다 고구려인이고 대왕을 중심으로 천신의 뜻으로 생명을 받은 동포들이거늘 어찌 차별하고 무시한단 말이오?’ 라고 이랬었잖아.”
“기억력도 참 좋으십니다. 사실 그 말씀은 지금의 마마이신 거련태자게서 늘 하시던 말씀이었어요.”
“음…그래도 난 아직 그때의 또랑또랑하던 아진님이 생각나.”
“오히려 그때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럴 수 있었을 거예요.”
“아니야, 아진님은 앞으로 더 큰일을 할 거야. 난 믿어.”
바람이 차가워 지는 것이 시간이 꽤 흘렀다.
“이제 일어나시지요, 가봐야 겠습니다.”
아진이 먼저 일어서며 말했다.
무미도 섭섭하다는 태를 감추지 않으며 일어섰다.
“그래… 이제 가야하겠지?”
두 사람이 아까의 전나무 앞에서 헤어지려는데 그때 장수왕과 마주쳤던 것이었다.
하필이면 바로 그때 왕이 산책을 나왔던 것이었다.
아진과 무미가 서로 먼저 들어가라며 손짓을 할 때 저만큼에서 왕과 맞닥뜨린 것이었다.
무미는 왕에게 목례만하고 쏜살같이 내궁 쪽으로 달려갔고 아진도 허리 숙여 인사했지만 왕은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내관과 이야기를 계속하며 저쪽으로 가기에 숙소로 돌아갔었다.

여기저기서 함성과 고함이 계속 울려 졌고 금상천막 앞의 하적장에 피를 흘린 짐승들이 쌓여 갔다. 일부에서 염려 한 대로 큰 짐승이 별로 없는게 아쉬움이었지만 사냥 대회는 무르익어 갔다.
중화를 마친 뒤 아진은 왕을 호위해서 사냥터 이곳 저곳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모두들 사냥에 열중이어서 왕이 행차를 해도 간단히 포권례로 인사하면서 소리만 지를 뿐이었지 크게 예의를 차리고 황공해 하는 모습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신경들을 쓸 겨를이 없었다.
왕도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 이었다.
연나부 사람들이 지키는 목을 돌아 압골 부락 창잡이 청년들이 있는 쪽으로 갈 때였다. 길이 험하다고 왕은 말을 연나부 천막에 두고 도보를 하고 있었다.
무미도 굳이 진작부터 따라 나서 있었다.
“어 저쪽으로 간다” “이쪽으로 몰아라” “조심해”
왁짜지껄한 소리가 저만큼에서 들리는가 싶더니 수풀이 망가지는 소리가 돌연 가깝게 들렸고 화살 몇 대를 맞아 성이 오를 대로 오른 집채 만한 맷돼지가 왕과 아진 이 있는 곳으로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야차의 형상 그대로 였다. 등과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머리 부분에는 부러진 활촉이 꽂여 있어 피가 말라 있었는데 식식 대는 숨 소리가 십여장이나 떨어져 있었는데도 천둥처럼 들렸다. 궁녀의 비명소리가 더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멧돼지는 지체없이 왕을 향해 돌진 해 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화살이 하나 날라 왔는데 아진과 왕의 머리 사이를 위험스럽게 파고든 화살이었다. 멧돼지에 맞기는 했는데 살갓만 스치고 튕겨 나갔고 흉폭한 짐승은 더 기승을 부리며 달려 들었다.
왕은 그때 활을 들고는 있었다. 그러나 등 뒤의 화살을 빼내 겨냥할 겨를이 없었다. 피 흘리는 짐승의 거무튀튀한 뿔이 바로 코앞에 보일 정도로 가깝게 돌진해 있었다.
이때 아진의 단창이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퍽하는 소리가 울렸다.
양미간 사이의 급소를 정확하게 맞추었고 퍽 하는 소리가 왕 일행의 귓전에 그대로 파고들었다.
창을 던지자 말자 왕 쪽으로 몸을 날린 아진이 왕을 껴안듯 하며 함께 풀숲에 넘어진 것과 멧돼지가 쿵하고 쓰러진 것이 거의 동시였다.
그 담대한 왕도 하얗게 질려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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