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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사칼럼 &#8211; hiny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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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미주 뉴욕 뉴스 &#38; 커뮤니티</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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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명사칼럼 &#8211; hiny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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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트럼프 대통령, 제2의 러시아를 꿈꾸는 것이 아닌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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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Tue, 21 Apr 2026 13:05:39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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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는 참혹했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는 평생의 저축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고, 초강대국 시민의 자존심은 국제 사회의 구걸자로 전락했다. 마피아가  활개치고 평균 수명이 급감하는 절망 속에서 러시아인이 선택한 것은 70년간 금기시됐던  ;정교회 였다. 푸틴은 이 영적 목마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정교회를 국가 통합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strong></p>
<p>1990년대 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는 참혹했다. 국영 기업의 민영화는 평생의 저축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고, 초강대국 시민의 자존심은 국제 사회의 구걸자로 전락했다.</p>
<p>마피아가  활개치고 평균 수명이 급감하는 절망 속에서 러시아인이 선택한 것은 70년간 금기시됐던  ;정교회 였다. 푸틴은 이 영적 목마름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정교회를 국가 통합의 파트너로 삼는 제권일치(Caesaropapism)적 권력구조화로 ;러시아만의 독자적인 길을 선포했고, 이는 잃어버린  제국의 영광을 복원하려는 ;루스키 미르(Russian World)  프로젝트로 이어졌다.</p>
<p>놀랍게도 21세기 미국이 이 위험한 경로를 벤치마킹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가 된다. 과거  트럼프의 책사 스티브 배넌이 푸틴을 세속주의에 맞서 전통 가치를 수호하는 전략가라  치켜세우며 &amp;#39;유대-기독교적 가치에 기반한 미국 재건을 주장했을 때, 많은 이는 이를 극우파의 수사로 치부했다.</p>
<p>그러나 지금 전개되는 상황은 그것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정교한   미국판  제권일치의 설계도였음을 증명한다.<br />
역사적으로 제국이 쇠퇴하거나 극심한 격변기에 처할 때, 특정 종교가 국가 이데올로기로<br />
등극하는 것은 흔한 패턴이다. 다문화주의, 세속화, 경제적 불평등으로 기존의 국가 정체성이  흔들릴 때, 대중은 명확하고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지침을 갈구한다.</p>
<p>이때 등장하는 정치 권력은 내부의 타락(리버럴리즘)과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순수한 본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명분을 내세운다. 복잡한 사회 문제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단순화하는  종교적 근본주의는 대중에게 강력한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하는 정신적 접착제가 되기 때문이다.</p>
<p>오늘날 미국 기독교 민족주의의 발현은 단순한 종교 운동이 아니다. 이는 지도자가 법적<br />
정당성만으로 확보하기 힘든 전폭적 지지를 얻기 위해 종교적 신성화를 선택하는  제권일치(Caesaropapism)적 권력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다.</p>
<p>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박해받는 예수와 동급으로 묘사하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는 지지자들에게 그를 정치인이 아닌 신앙의 수호자로 각인시키려는 고도의  전략이다. 종교 단체는 국가로부터 법적 특권과 재정 지원을 약속받고, 정치 권력은 종교로부터 신성한 권위를 부여받는 이 위험한 거래가 현재 미국 정치의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다.</p>
<p>문제는 이 미국의 제권 일치화가 지향하는 바가 민주주의의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성 정체성 논의, 가족 해체, 급격한 기술 발전에 대한 공포를 먹고 자란 미국의 기독교 민족주의는  낙태 금지와 공립학교 내 종교 교육 강요 등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적 강제로 이어지고 있다.</p>
<p>미국은 어쩌면 1990년대 러시아가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계  패권의 약화와 내부적 분열 속에서, 어떤 시민들은 “다시 한 번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미국판  루스키 미르(러시아의 영광)’의 유혹 앞에 서 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종교가 정치를 삼키고  정치가 종교를 도구화할 때, 그 끝은 찬란한 제국의 부활이 아니라 다양성이 거세된 권위주의적  통제였다는 사실을 말이다.</p>
<p>21세기 미국 시민들에게 주어진 질문은 엄중하다. 헌법이 보장한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켜낼  것인가, 아니면 종교라는 허울을 쓴 새로운 신권 정치의 피지배자가 될 것인가이다. 미국이  러시아의 길을 따라갈지, 아니면 다시금 민주주의의 보루로 남을지는 이 미국 정교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과 선택을 하는 선거 참여 여부에 달려 있다. (동찬 4/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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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용기와 난폭함의 본질적 차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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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13 Apr 2026 12:46:19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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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자 했던 선구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산화한 역사가 이 달에 유독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이라는 대업을 완수하고 1865년 4월15일 서거했다.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strong></p>
<p>4월은 잔인한 달이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 때문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고자 했던 선구자들이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산화한 역사가 이 달에 유독 깊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br />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흑인 노예 해방이라는 대업을 완수하고 1865년 4월15일 서거했다. 흑인 민권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8년 4월 4일 암살당했다.</p>
<p>한국 현대사에서도 4월 19일은 이승만 독재에 항거한 민주주의의 함성이 피로 물든 날이며,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커우 공원에서 대한독립의 의지를 폭탄으로 천명한 날이다.<br />
이들은 모두 용감했으나, 그 용기의 대가는 하나뿐인 목숨이었다.</p>
<p>용감한 자는 자신의 신념과 공동체의 선(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다. 때로는 자신을 희생하여 공동체를 구한다. 반면, 난폭한 자는 개인적 분노나 권력욕에 이끌려 타인과 공동체를 파괴한다.<br />
두 모습은 겉보기에 힘과 저항이라는 형식을 취해 비슷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동기와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p>
<p>역사 속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수십 년간 투옥되었지만 출옥 후 대통령이 되어서도 보복이 아닌 화해와 법치를 선택했다. 이것이 진정한 용기다. 반면, 아돌프 히틀러나 현대의 폭군들은 자신의 난폭함을 국가를 위한 용기로 위장했다.<br />
그들은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며 인간성과 정의를 짓밟았을 뿐이다. 난폭함은 결코 용기가 될 수 없다.</p>
<p>동서양의 성현들은 일찍이 이 둘의 구분을 엄격히 가르쳤다.   공자는 용감함이 의로움을 따르지 않으면 난폭함(亂)으로 흐른다고 경계했고, 불경에서는 지혜 없는 용맹을 어리석음의 칼이라 불렀고, 예수는 칼로 일어서는 자는 칼로 망한다며 폭력의 악순환을 끊으라고 가르쳤다.<br />
성현들의 공통된 가르침은 명확하다. 참된 용기는 사랑, 정의, 그리고 절제라는 토양 위에서만 꽃필 수 있다는 점이다.<br />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 혁명, 전쟁, 그리고 극심한 분열이라는 문명적 대격변기를 지나고 있다. 이런 혼란기에 지도자가 난폭함을 결단력 있는 용기로 포장하여 휘두를 때,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된다.</p>
<p>그래서 유권자는 냉철한 눈으로 그 차이를 식별해야 한다. 거친 언사와 적대감을 선동하는 힘이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진심의 방향을 읽어야 한다. 진정한 용기는 상대를 품는 용기, 협상하는 용기, 절제하는 용기, 그리고 무엇보다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켜내는 용기다.</p>
<p>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비록 수적으로는 소수일 수 있으나, 성숙한 정치의식을 통해 시대의 혼란을 극복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 한인 사회의 현명한 선택은 지역사회와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성숙한 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노력이 필요하다.<br />
특정 이념이나 종교, 그리고 진영을 절대화하는 교조주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  무엇이 실제 미국 사회와 우리 공동체를 위한 실익인지 살펴보는 현실 직시가 필요하다.</p>
<p>분노를 부추기는 난폭한 수사에 휩쓸리지 말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며 진실을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br />
분노를 동력으로 삼는 난폭한 지도자가 아닌, 지혜와 정의로 공동체를 지키는 용감한 지도자를 선택할 줄 아는 안목. 그것이야말로 격동의 시대에 우리가 흔들리지 않고 생존하며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동찬4/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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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부활의 진정한 의미와 문명의 야만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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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06 Apr 2026 12:21:05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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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지난 4월 5일은 부활절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날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한 존재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방식으로 전환된 사건이다. 즉 부활은 동일한 삶의 반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나아가는 ‘새 창조’의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 신앙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strong></p>
<p>지난 4월 5일은 부활절이었다.<br />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지 사흘 만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날이다. 이 사건은 단순한 생명의 회복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한 존재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방식으로 전환된 사건이다. 즉 부활은 동일한 삶의 반복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나아가는 ‘새 창조’의 의미를 지닌다.</p>
<p>기독교 신앙이 부활에 근거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존재의 근본적 변형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뜻한다. 이러한 부활의 개념은 종교적 교리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다시 살아남(again)’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남(anew)’이라는 점에서, 역사와 문명을 이해하는 하나의 틀로 확장될 수 있다.</p>
<p>부활은 과거의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이전 질서를 넘어서는 질적 도약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정한 부활은 특정 존재가,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의 변형이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와 의미가 형성된다는 것이다.</p>
<p>이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의 역사적 전개는 일정한 연속성을 지닌 변형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가 등장하고, 다시 조선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지배 체제는 변화했지만, 문화적·민족적 기반은 상당 부분 유지되었다. 이는 단순한 반복이라기보다, 기존 질서를 넘어선 재구성의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p>
<p>반면 중국의 경우에는 왕조 교체 과정에서 원, 명, 청이라는 지배 집단의 민족적 변동이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중화민족’이라는 통합적 정체성 개념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를 다양한 역사적 단절을 통합하려는 역사 공정의 시도로 해석하기도 한다.</p>
<p>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변형’이 항상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부활이 질적 도약을 전제한다면, 인류 문명은 오히려 기술과 제도의 발전 속에서 윤리적 측면에서는 역설적인 퇴행을 반복해왔다. 신학자 Reinhold Niebuhr는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으나 집단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개인의 폭력은 법과 제도로 억제되었지만, 국가,민족,종교, 그리고 이념과 같은 집단 단위의 폭력은 더욱 정교하고 거대해졌다.</p>
<p>과거의 폭력이 물리적 도구에 의존했다면, 오늘날의 폭력은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비가시적으로 작동한다. 군사력은 첨단화되었고, 정보와 알고리즘은 여론과 인식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는 폭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효율적이고 구조적인 형태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p>
<p>부활이 내포하는 핵심은 자기 비움과 희생, 그리고 타자를 향한 사랑이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국가와 문명, 심지어 종교조차도 이 가치를 내면화하기보다 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해온 경우가 적지 않다.<br />
신앙이 요구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윤리이지만, 현실의 집단은 오히려 적대와 배제를 통해 자신을 유지해왔다.<br />
오늘날 국제 질서를 둘러싼 긴장은 이러한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2차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국제전이다. 그리고 강대국 간의 전략적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은 세계 경제와 안보 질서를 동시에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p>
<p>이러한 갈등은 단일한 원인이라기보다, 정치·경제·군사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br />
특히 강대국의 군사적 선택은 국내 정치와 결합되면서 또 다른 사회적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우려되는 것은 이란에 대한 공격의 승패에 따라 여론 몰이 여파로 국내의 특정 집단, 특히 이민자나 소수자에 대한 더 강경한 탄압이다. 이러한 현상은 역사적으로도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p>
<p>부활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은 타자를 억압하는 힘이 아니라 자신을 절제하는 윤리로 나타나야 한다. 폭력의 정교화가 아니라 관계의 회복, 지배의 확대가 아니라 책임의 확장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문명은 ‘다시 살아남는 것’을 넘어 ‘새롭게 태어나는 것’에 가까워질 수 있다.<br />
그리고 이러한 전환은 제도나 권력 이전에, 그것을 선택하는 시민들의 의식과 판단에서 시작된다. (동찬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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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철학이 없는 지식이 만든 야만의 시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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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30 Mar 2026 12:59:20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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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밀양이 고향인 후배가 봄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사진 속 밀양의 거리와 도심, 옛 가옥 정원에 활짝 핀 벚꽃. ‘아,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지겨웠던 겨울을 한 방에 날려버린 그 만개한 벚꽃 사진에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데 꽃만큼 좋은 건 없다. 그런데...]]></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strong></p>
<p>밀양이 고향인 후배가 봄을 찍어서 보내 주었다. 사진 속 밀양의 거리와 도심, 옛 가옥 정원에 활짝 핀 벚꽃. ‘아, 봄이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지겨웠던 겨울을 한 방에 날려버린 그 만개한 벚꽃 사진에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데 꽃만큼 좋은 건 없다.</p>
<p>그런데 중동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 산업이 하나씩 멈춰 서고 생산이 곤두박질치면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그들은 왜 전쟁을 시작했을까. 왜 멈추려 하지 않을까. 매일 쏟아내는 폭탄과 미사일로 얼마나 많은 시설을 부수고 사람을 죽였는지 자랑하는 데만 열중한다.</p>
<p>현대 문명은 과거 어떤 황금기보다도 압도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왕족이나 귀족만 누리던 의학 혜택과 정보 접근성을 이제 대부분의 사람이 누린다. 옛날에는 ‘신분’이 인간의 가치를 결정했지만 이젠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교통과 통신, 특히 인공지능 기술은 지식의 전파와 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아 교육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게 만들었다.</p>
<p>문제는 이런 기술적 진보를 이끈 현대 교육이 생존과 경쟁을 위한 ‘도구적 지식’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인간 내면의 단단함을 기르는 ‘수신(修身)’은 아예 가르치지 않았다. 예전에는 지역사회와 이웃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강했지만, 이젠 개인의 자유가 극대화되면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공동체 의식이 해체되고 있다. ‘나’는 풍요로워졌지만 ‘우리’는 빈곤해졌다.<br />
빛의 속도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이 시대에 인류는 깊이 사유하고 기다리는 능력을 잃어 가고 있다. 철학이 없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지혜는 부족하고, 연결은 밀접하지만 유대는 멀어졌다.  결과적으로 현대인은 가장 풍요롭지만 가장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가 되었다.<br />
그래서 특정 목적을 위해 침략을 하고 건물을 파괴하고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자랑을 하는 괴물들이 날뛰어도, 그것이 ‘나’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만 계산할 뿐 인류애적 관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언론도, 국가도, 지도자도 없다. 철학 없는 지식 교육이 인간을 맹수보다 더 폭력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p>
<p>우리는 학교에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배우지 못했다. 오로지 성적을 올리고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지식 암기만 했다. 나와 공동체, 친구, 부모, 형제, 친척, 선생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상호작용해야 하는지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정글 같은 사회 속에서 그저 생존하기에 급급했다. 부부가 된다는 것,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부딪히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심지어 폭력적인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시대의 진보와 함께 우리 속의 폭력성도 진보했던 것이다.</p>
<p>조선 왕조가 50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교육이었다. 먼저 사람이 되고, 그다음으로 지식을 쌓으며, 마지막으로 그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는 단계적 교육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br />
유년기에는 소학(小學)으로 기초 예절과 글자, 그리고 ‘사람의 도리’와 습관을 익혔다. 청소년기에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해 논리적 사고와 문장력을 키우고, 개인 수양을 넘어 국가를 다스리는 ‘치인(治人)’의 학문을 배웠다. 성인기에는 배운 것을 삶에서 실천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자세로 도덕적 실천을 강조했다. 덕분에 세종 때 기틀을 다지고 정조 때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두 번의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다.</p>
<p>우리는 지금 가장 진보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동시에 과학적 폭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 모든 불행의 뿌리는 철학 없는 지식만을 가르쳐 인간을 더욱 맹수화하는 교육에 있다.<br />
벚꽃이 피는 봄처럼, 우리 마음에도 따뜻한 변화가 필요하다. 비록 미국 사회에서 소수 중의 소수이지만 한인 커뮤니티 차원에서 먼저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는 교육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해 보면 좋겠다. (동찬 3/30)</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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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봄의 고통을 넘어 한민족의 시대가 오는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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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23 Mar 2026 17:29:48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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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 깨어나는 경칩의 계절이 오면, 봄의 생명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그러나 막상 봄이 되어도 먹을 것이 없다. 한 입만 먹으면 여름까지 갈 기운이 생기지만, 그 한 입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봄은 생명의 계절이자, 동시에 가장 잔혹한 계절이다. 그러나 이...]]></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 센터 대표)</strong></p>
<p>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 깨어나는 경칩의 계절이 오면, 봄의 생명들이 하나둘 깨어난다. 그러나 막상 봄이 되어도 먹을 것이 없다. 한 입만 먹으면 여름까지 갈 기운이 생기지만, 그 한 입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봄은 생명의 계절이자, 동시에 가장 잔혹한 계절이다.<br />
그러나 이 잔혹한 봄을 견딘 생명만이 여름을 맞이하고, 가을의 결실을 누릴 수 있다.<br />
한민족은 100여 년 전, 나라를 빼앗기고 가장 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을 지나 살아남았다. 식민지의 굴욕, 전쟁의 참화, 그리고 세계 최빈국의 오명을 한 세대가 피땀으로 이겨냈다. 먹고살기 위해 세계로 나가고, 하나라도 배워 기술을 익혔고, 선진국이 버린 산업 기반을 물려받아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었다.</p>
<p>그 처절한 몸부림은 오늘날 세계 초일류 제조업 생태계라는 거대한 자산이 되었다. 나라를 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들과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던진 이들의 희생 위에, 대한민국은 100년 만에 선진국 대열에 입성했다.<br />
2026년 현재, 메기 강 감독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미국 시상식을 휩쓸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BTS의 공연에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열광하는 모습은  김구 선생님이 염원하시던 문화강국의 실현 그 자체다.</p>
<p>오늘의 한국은 민주주의와 산업화, 그리고 문화적 자산이 절묘하게 결합된 “역동의 문명 국가”로 나아가고 있다.<br />
AI 혁명과 기술문명의 변곡점에서, 한국은 그 유연한 사회구조와 높은 시민의식, 창의적인 문화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문명을 선도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 중 하나다. “K-콘텐츠의 세계화”, “기술 강국으로서의 AI 주도권”, “민주 시민사회의 안정성” 이 세 요소가 결합된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인류 문명사에서 주목할 만한 시점에 서 있다.</p>
<p>이 역동의 시대에, 미주 한인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한국의 성장과 미래는 결코 본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 세계 곳곳의 한인 사회가 그 성장의 네트워크를 이루는 또 하나의 뿌리이자 줄기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이제는 한인 사회도 더욱 세련되게 조직된 커뮤니티로 거듭 나야 전세계 한민족을 연결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허브에 한 역할을 담담 할수 있을 것이다.<br />
또한 AI와 첨단 기술, 문화산업, 교육 등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영역과 연결되는 교두보 역할을 미주 한인 사회가 맡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현지 사회에 기여하며 신뢰를 쌓는 커뮤니티로 성장해야 한다. 단순히 “한인끼리의 결속”이 아니라, 지역사회 속에서 한국인의 가치와 기여가 존중받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p>
<p>이제 우리는 문명사적 대전환기의 문 앞에 서 있다.<br />
팬데믹, 전쟁, AI 혁신은 기존 질서를 빠르게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이 거대한 “겨울의 끝”에서, 대부분의 세계인들이 또다시 봄의 고통을 견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봄은 과거의 절망을 극복해 온 세대의 DNA를 가진 민족에게는 새로운 도약의 계절이 될 것이다.<br />
한국이 문명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면, 미주 한인들은 세계 각지에서 그 변화를 지역사회 속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리가 한민족의 정신을 현지에서 실천할 때, 비로소 한민족은 전 인류 문명 전환기의 핵심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봄의 고통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여름의 성장과 가을의 결실은 반드시 온다.  (동찬 3/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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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봄을 준비하는 미주 한인 공동체의 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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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16 Mar 2026 13:53:20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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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봄이다. 한 달 넘게 우리를 괴롭히던 눈더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햇살은 따뜻하게 온기를 퍼뜨린다. 동네 지인의 집 마당에는 겨울의 끝자락을 뚫고 매화가 피었다. 봉오리 몇 가지를 꺾어 병에 담아 주었고, 거실 한가운데 두고 매일 들여다본다. 그렇게 봄은 꼭 다시 온다. 아무리 무거운 겨울이라도...]]></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strong></p>
<p>봄이다. 한 달 넘게 우리를 괴롭히던 눈더미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햇살은 따뜻하게 온기를 퍼뜨린다. 동네 지인의 집 마당에는 겨울의 끝자락을 뚫고 매화가 피었다. 봉오리 몇 가지를 꺾어 병에 담아 주었고, 거실 한가운데 두고 매일 들여다본다. 그렇게 봄은 꼭 다시 온다. 아무리 무거운 겨울이라도 결국 사라진다.<br />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겨울 속에 있다.</p>
<p>4년을 넘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멈출 기미가 없고, 미국의 침공에 10년 동안 맞서 싸웠던 아프가니스탄은 이웃 파키스탄과 전쟁 중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마침내 숙적 이란을 맹폭했다.<br />
가공할 폭격으로 이란은 초토화되었고, 최고 지도자를 비롯하여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br />
이란은 걸프만의 미군 기지와 에너지 시설을 보복 공격했고, 호르무즈 해협까지 봉쇄했다. 전 세계 원유의 20%가 멈춰 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이미 치솟은 에너지 가격은 더 오르고, 세계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p>
<p>미국은 내적으로도 위기다. 반이민 정책은 미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었다. 농장과 식당, 공장마다 일손이 모자라고 관세로 수입물가까지 폭등했다. 여기에 전쟁 비용 지출이 폭증하면서 국채 이자는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며, 이미 국방비를 앞질렀다.<br />
이란 전쟁 첫 일주일 동안에만 113억 달러가 투입됐고, 하루 20억 달러씩 돈이 타들어간다. 이대로 6개월만 이어지면 최소 3천억 달러의 군비가 소모될 것이라고 한다.</p>
<p>18세기 경제학자 아담 퍼거슨은 한 나라의 부채에 대한 이자총액이 국방비를 넘어서면 그 나라는 몰락한다고 했다. 역사학자 닐 퍼거슨은 이를 “퍼거슨 리밋(Ferguson Limit)”이라 이름붙이며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 프랑스 부르봉 왕조, 오스만 제국, 대영제국과 같은 강대국의 몰락을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같은 길을 걸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리고 그 임계점을 이미 2024년에 넘어섰다.  지금의 미국은 더 이상 우리가 알고 있던 나라가 아니다. 사회는 불안하고, 정책은 흔들리며, 동맹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세계인들이 몰려오던 미국은 이젠 서로 떠나려는 나라가 되었다.</p>
<p>미주 한인 사회 역시 불안하다. 서류미비자들은 추방의 공포 속에 일터에서 사라졌고, 고국으로 돌아간 사람도 늘고 있다. 합법 체류자 중에서도 ‘역이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새로운 세대는 다르다. 이들은 이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위기는 언제나 공동체의 힘을 시험한다.</p>
<p>지금이야말로 미주 한인들이 단결하여, 운명 공동체로서 이 위기를 함께 이겨낼 준비를 해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시민권을 확보하고,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비즈니스를 제대로 일구며, 정치적 목소리를 만들어야 한다. 재정 관리 능력을 키우고, 각종 세미나와 스터디를 통해 지식과 정보로 무장해야 한다.</p>
<p>무엇보다 서로 돕고 배워 가며 끈끈한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미국 사회 속에서 영향력을 가지는 첫걸음이다.  겨울이 아무리 길고 혹독해도, 봄은 반드시 온다. 다만 누가 그 봄을 맞이할 준비를 했느냐가 다를 뿐이다. 지금 우리의 각성, 단결, 준비가 미래의 미주 한인사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끝자락에 피어나는 매화처럼 우리 공동체도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3/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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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이제는 꿈의 궁전에서 깨어나야 할 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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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09 Mar 2026 16:30:05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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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 동찬 (뉴욕 시민참여 센터 대표) 냉전 승리 이후 서구, 특히 미국은 스스로 만든 ‘꿈의 궁전’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의 최종 목적지이고, 결국 모두가 미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이 그 성벽을 이뤘다. 지금 밀리 전 합참의장과 에릭 슈미트, 키쇼어 마흐부바니교수가 공통으로 던지는 경고는 간단하다. 서구의 위기는 외부의...]]></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h6>김 동찬 (뉴욕 시민참여 센터 대표)</h6>
<p>냉전 승리 이후 서구, 특히 미국은 스스로 만든 ‘꿈의 궁전’에 너무 오래 머물렀다.<br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인류의 최종 목적지이고, 결국 모두가 미국식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오만한 확신이 그 성벽을 이뤘다. 지금 밀리 전 합참의장과 에릭 슈미트, 키쇼어 마흐부바니교수가 공통으로 던지는 경고는 간단하다. 서구의 위기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사상적 오만과 노후화된 시스템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br />
밀리와 슈미트는 미래 전쟁이 드론, AI, 로봇이 지배하는 전장으로 급변했는데도, 미국 국방 시스템은 여전히 느리고 비대한 조달 절차와 구식 무기 중심 사고에 묶여 있다고 비판한다.</p>
<p>마흐부바니는 서방이 “자기만 옳다”는 믿음에 갇힌 채, 아시아, 브라질, 인도, 아프리카와 같은 글로벌 사우스의 시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자세 자체가 전략적 자살행위라고 지적한다.<br />
정치 양극화와 포퓰리즘이 심해질수록, “민주주의는 너무 느리니, 권위주의가 오히려 전쟁과  패권 경쟁에는 더 효율적이지 않나”라는 유혹이 고개를 든다. 단기 동원력만 보면 그 말이 맞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에릭 슈미트가 강조하듯, 미래 패권의 핵심은 민간 혁신을 군사력으로 얼마나 빨리 전이시키느냐에 있다.</p>
<p>AI와 같은 파괴적 기술은 자유로운 데이터 흐름, 실패가 허용되는 스타트업 문화, 권위에 도전하는 연구와 토론이 있어야 제대로 자란다. 정보가 억압되고 비판이 봉쇄된 권위주의 체제는, 단기 속도는 빠를지 몰라도, 장기 혁신과 전략 수정 능력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br />
지금의 혼란은 민주주의 자체의 실패라기보다, 그 위에 쌓인 관료주의와 기득권의 안일함이 체제를 갉아먹어 온 결과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개방형 플랫폼을 지키고 고치는 일은, 더 이상 ‘고귀한 가치’의 문제가 아니다. AI와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실질적인 생존 전략이다.</p>
<p>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서방과 러시아의 대리전이자, 미래 전쟁의 시험장이기도 하다.<br />
여기서 드러난 건, 서구의 고가 무기 체계가 저가 드론·소모전술 앞에서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얼마나 허겁지겁 ‘혁신’을 따라가고 있는지다. 동시에 글로벌 사우스는 러시아 침공을 비판하면서도, 서방 제재에는 대거 동참하지 않으며 “유럽의 전쟁을 세계의 절대 기준으로 보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br />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과 이어진 미·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이 서구의 도덕성에  깊은 의문을 남겼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약 56~60%가 이란에 대한 군사 행동에 반대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처에 대해서도 다수가 부정적이다. 상당수는 이 전쟁이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들기는커녕, 더 위험하게 만들었다고 느끼고 있다.<br />
결국 두 전쟁 모두, 서구가 여전히 군사력을 과시할 수는 있지만, 도덕적 신뢰·동맹 피로·국내 피로라는 비용이 급격히 쌓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p>
<p>그래서 2026년 미국 중간선거는 단순한 정당 싸움이 아니다. 질문은 훨씬 더 직설적이다.<br />
“과거의 향수에 기대 버틸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러운 혁신을 감수할 것인가.”<br />
여론조사들은 이란 군사 행동에 대한 반대 여론, 해외 개입에 대한 피로감, 극단적 양극화 속에서 외교·안보까지 정파적 싸움에 휘말려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 상황에서 유권자가 던지는 표는, 미국이 어떤 리더십과 전략에 미래를 맡길지에 대한 신호다.<br />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같은 과거 회귀형 구호에 표를 던지는 건, 사라진 세계에 집세를 내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br />
기존 진영의 안일한 현상 유지, “그래도 우리가 맞다”는 자기 위안 역시 답이 아니다.   진짜 필요한 건, 세계를 미국식으로 개조하겠다는 오만을 버리고, 다극화된 세계에서 실리를  챙기면서 동맹과 경쟁국을 동시에 관리할 현실 감각, 관료제를 해부할 의지, 권위주의 유혹을 단호히 거부할 최소한의 민주적 본능이다.<br />
지금 미국이 찾아야 할 인물은, 카메라 앞에서 말 잘하는 스타 정치인이 아니다. 썩어가는 제도와 낡은 국방·외교 시스템을 과감히 도려낼 냉혹한 집도의다.<br />
표를 던질 때, 분노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질문은 이거다.<br />
“누가 나와, 내 세대의 생존 가능성을 높일 것인가.”<br />
그 질문에 대한 냉정한 답이 모일 때, 미국은 비로소 무너지는 꿈의 궁전에서 걸어 나와,  혼란스러운 현실 세계에서 다시 한 번 주도권을 잡을 기회를 얻을 것이다. (동찬 3/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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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공동체와 정체성,  우리가 3.1절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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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02 Mar 2026 17:06:06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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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 유난히도 겨울다운 겨울이었다. 두 차례의 폭설과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매서운 추위는 세상을 거대한 빙하 속에 가두어 놓은 듯했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햇살의 기운이 바뀌면, 강해지는 봄의 생명력은 결국 겨울의 잔재를 밀어내기 마련이다. 곧 산과 들은 녹색으로 물들고, 꽃들이 피어나며, 만물이 생기를 되찾아 산으로 들로...]]></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 김동찬 (뉴욕 시민 참여센터 대표)</strong></p>
<p>유난히도 겨울다운 겨울이었다. 두 차례의 폭설과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매서운 추위는 세상을 거대한 빙하 속에 가두어 놓은 듯했다. 그러나 입춘이 지나고 햇살의 기운이 바뀌면, 강해지는 봄의 생명력은 결국 겨울의 잔재를 밀어내기 마련이다. 곧 산과 들은 녹색으로 물들고, 꽃들이 피어나며, 만물이 생기를 되찾아 산으로 들로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p>
<p>자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거대한 공동체(Community)가 존재한다. 산은 나무와 풀,꽃과 짐승들이 어우러지는 터전이 되고, 물은 물고기와 새, 곤충들이 살아가는 근거지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공동체가 그 안에 속한 존재들의 정체성(Identity)을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산에 사는 존재 앞에는 산이라는 머릿말이 붙고, 물에 사는 존재 앞에는 물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공동체 없는 정체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생명체는 자신이 뿌리 내린 공동체 안에서 가장 건강하게 성장하고 다음 세대를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p>
<p>인류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다. 특정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며 형성된 공동체는 고유의 언어와<br />
문화, 역사를 쌓으며 다른 집단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갖게 된다. 인종, 민족, 국가, 고향에 따른 정체성은 곧 그 개인의 뿌리이자 삶의 지탱하는 언덕이 된다.</p>
<p>지난 일요일은 3월 1일이었다. 한민족이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라면 107년 전, 일제의 압제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선조들의 역사를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의 &amp;#39;나&amp;#39;를 있게 한 공동체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는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민족의 뿌리를 간직한 미주 한인(Korean American)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한국과 미국, 두 공동체의 접점에 놓여 있다.</p>
<p>특히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차세대들은 종종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스스로를 미국인이라  생각하지만, 누군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부모의 고향을 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방인이 된 듯한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미주 한인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소속감을 갖는 것이다.<br />
자녀들이 정체성의 혼란 없이 당당하게 성장하게 하려면 부모 세대가 구축한 공동체를 보여주고 경험하게 해야 한다. 한인 단체들이 운영하는 자원봉사, 인턴십,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미주 한인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밥상머리 교육이다.</p>
<p>함께 식사하며 3.1운동의 정신이 무엇인지, 4.29 LA 폭동의 시련을 우리 공동체가 어떻게  이겨냈는지, 그리고 우리 가문의 뿌리는 어디인지를 들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단순히 미국에 사는 이방인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진 미주 한인 공동체의 일원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br />
조상들이 3.1절에 목숨을 걸고 독립만세를 외친 이유는 명확하다. 나를 지켜줄 공동체, 즉  나라가 없으면 개인의 정체성과 존엄 또한 유지될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p>
<p>올해의 시작에서 우리는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공동체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공동체에 뿌리를 둔 정체성이 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말이다. 이를 스스로 깨우치고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것, 그것이 3.1절을 맞는 진정한 의미이자 미주 한인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동찬 3/2)</p>
]]></content:enco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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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얼어붙은 2월의 기후, 얼어붙은 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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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23 Feb 2026 14:51:49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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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김동찬(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미 동북부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가혹하다. 1월 말 쏟아진 폭설은 채 녹기도 전에 겹겹이 쌓여 거대한 빙벽이 되었고,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폭설은 도심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처음에 낭만적으로 보이던 순백의 눈은 이제 주차 공간을 잠식하고 차량을 파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흰 눈을 보며 감탄하는 대신...]]></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김동찬(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strong></p>
<p>미 동북부의 이번 겨울은 유난히 가혹하다. 1월 말 쏟아진 폭설은 채 녹기도 전에 겹겹이 쌓여 거대한 빙벽이 되었고, 한 달 만에 다시 찾아온 폭설은 도심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처음에 낭만적으로 보이던 순백의 눈은 이제 주차 공간을 잠식하고 차량을 파괴하는 애물단지가 되었다.</p>
<p>사람들은 이제 흰 눈을 보며 감탄하는 대신 원망을 쏟아낸다. 이 혹독한 자연의 풍경은 오늘날 우리가 발 딛고 선 사회의 단면과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다.<br />
물가는 폭등하고 노동력은 증발했다. 엡스틴 파일에 기록된 권력층의 추악한 행태는 상식의  범주를 넘어섰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관세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민들의 경제적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p>
<p>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크게 다뤄졌다.  그러나 기사들을 읽어보면 그래서 물가가 내려간다는 건지, 단지 정치적 견제일 뿐인지 명확하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정책은 여전히 논쟁 속에 있고, 시민은 그 결과가 자신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분간하기 어렵다.<br />
엡스틴 사건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앤드루 왕자는 법적·사회적 책임을 지는 과정을 겪고 있지만, 미국의 최고위층 인사들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이 이루어니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법은 모두에게 같은가, 아니면 어떤 이들에게는 예외인가. 시민의 눈에는 그 경계가 흐릿하다.<br />
문제는 개별 사건이 아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조차 명확히 가려내기 어려운 환경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사실상 사회적 빙하기를 살고 있다.<br />
과거의 독재가 진실을 억압하고 감추는 차단의 방식 이었다면, 현대의 권력과 집단들은 ;혼란의 방식을 택한다. 수많은 매체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프로파간다(대중선전)는 무엇이 진실인지 판단할 능력을 마비시킨다. 진실은 이제 더 이상 통합의 가치가 아니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진실은 재단되고, 모든 사건은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전락했다. 여기에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적 도구까지 더해지며 가짜 뉴스와 왜곡은 더욱 정교해졌고, 사회는 더 잘게 쪼개져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br />
길가에 쌓인 눈을 제때 치우지 않으면 그것은 딱딱한 빙하가 되어 우리의 일상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사회적 문제들 역시 마찬가지다. 언론과 권력이 본질을 흐리고, 시민들이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하는 사이,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은 암초처럼 거대해져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br />
이제 우리에게는 ‘현상’ 너머를 꿰뚫어 보는 힘이 절실하다. 복잡한 미디어의 메시지를 왜곡하는 매개와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철학적·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하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을 넘어, 공동체의 존립을 위해 진실을 갈구하는 시민의 자세가 회복되어야 한다.</p>
<p>빙하기는 영원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깨어 있는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이 사회적 빙하기는 예상보다 훨씬 길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 것이다. 올바른 지도자를 선출하고 건강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결국 진실을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연대에서 시작된다.<br />
치우지 못한 눈이 얼어붙어 발길을 묶듯, 외면한 진실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뜨거운 논쟁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버린 판단력을 되찾는 일이다. (동찬2/23)</p>
<p>&nbs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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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대통령의 날, 링컨과 루스벨트를 다시 찾는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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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c:creator><![CDATA[안지영 기자]]></dc:creator>
		<pubDate>Mon, 16 Feb 2026 15:45:33 +0000</pubDate>
				<category><![CDATA[명사칼럼]]></category>
		<category><![CDATA[타운뉴스]]></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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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긴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복잡하고 심각하다. 2026년의 미국과 인류는 단순한 불황이나 갈등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타 전체가 흔들리는 ‘복합위기’ 앞에 서 있다. 링컨이 연방의 분열을 막고, 루스벨트가 경제 붕괴를 수습했듯,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거인의 리더십이다. 지금 경계해야...]]></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trong>긴동찬 (뉴욕 시민참여센터 대표)</strong></p>
<p>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복잡하고 심각하다.<br />
2026년의 미국과 인류는 단순한 불황이나 갈등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타 전체가 흔들리는 ‘복합위기’ 앞에 서 있다.<br />
링컨이 연방의 분열을 막고, 루스벨트가 경제 붕괴를 수습했듯,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한 번 거인의 리더십이다. 지금 경계해야 할 것은 위기 그 자체보다, 위기를 키우는 ‘무능하고 편협한 리더십’이다.</p>
<p>우리는 지금 거대한 문명사적 격변이 파도처럼 몰아치는 그 한가운데 있다.<br />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보호무역은 물가상승과 공급망 붕괴라는 부메랑이 되었고 세계 질서를 극겹히 해체시키고 있고, AI는 생산성을 높였지만 일자리를 위협하고, 가짜 뉴스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기술의 역설’을 낳고 있고, 기후재앙 앞에서 인류가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각국은 ‘각자도생’의 길로 내달리고 있다.</p>
<p>이 폭풍우 속, 지금 이 나라의 선장은 누구인가. 과거의 위기는 오늘보다 단순했다. 19세기엔 전쟁에서 져도 국토는 남았다. 그러나 핵과 AI, 기후 위기가 얽힌 오늘의 실패는 인류 전체의 퇴보를 의미한다. 이제 대통령의 결정 하나가 단순히 4년의 정치적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향후 100년의 국가 생존을 가른다.<br />
역사는 이미 가르쳐 주었다. 무책임한 포퓰리즘과 즉흥적 보복 정치는 최악의 대통령을 만든다.<br />
제임스 뷰캐넌은 남북전쟁 직전, “헌법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 결과,나라는 두 동강 났다. 리더의 방관은 중립이 아니라 직무유기이며, 곧 파멸의 다른 이름이다.</p>
<p>링컨의 뒤를 이은 앤드류 존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흑인 인권 보호를 위한 의회의 노력을 거부권으로 막고, 남부 기득권의 편에 섰다. 신념의 독선이 민주주의를 마비시킨 것이다.<br />
이 두 대통령의 실패는 오늘 우리에게 준엄한 경고를 보낸다. 갈등을 방치하는 회피와, 자기  진영만 돌보는 독선이 결합할 때, 국가는 회복 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진다.<br />
위기의 시대에 대통령이라면 반드시 세 가지 원칙을 세워야 한다.</p>
<p>첫째, 갈등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야 한다. 뷰캐넌처럼 법 뒤에 숨어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AI가 일자리를 위협하고 관세가 물가를 흔드는 그 현장으로 직접 가서 국민을 설득하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통합은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대파와 밤새 토론해서라도<br />
합의점을 끌어내는 ‘능동적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br />
둘째, 국가의 도덕적 나침반을 바로 세워야 한다. 존슨처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인권과<br />
정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 당장은 표가 안 되더라도, 100년 뒤 미국의 가치를 지킬 결정을<br />
내려야 한다. 그것이 기후위기 대응이든, 기술윤리 확립이든, 대통령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민의<br />
생존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p>
<p>셋째, 제도와 규범을 존중하는 품격을 보여야 한다. 권력은 칼이 아니라 방패다. 반대편을 적으로 만들며 ‘내 편’만 챙기는 정치는 국가를 병들게 한다. 워싱턴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아<br />
민주주의의 기틀을 닦았듯, 법치의 경계를 지키는 절제된 리더십이 필요하다.<br />
훌륭한 국민이 위대한 대통령을 만든다. 그러나 대통령의 품격과 결단이 그 국민의 위대함을<br />
완성한다. 지금 우리가 찾는 대통령은 완벽한 초인이 아니다. 실수를 인정할 줄 알고, 비판에 귀를 열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정치적 생명을 걸 줄 아는 사람이다.</p>
<p>역사는 이 순간의 리더를 냉정하게 기록할 것이다. 그가 ‘제2의 링컨’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제2의 뷰캐넌’으로 추락할 것인가. 대통령의 날, 다시금 링컨과 루스벨트를 생각해 본다. (동찬 2/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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